예술, 예술인 - 33 서양화가 박 동 진
자연 사색·우주공간 속 자아찾기 고민 엿보여

편안해진 색감 눈길 … 내일까지 인사동서 전시


박동진 작가가 즐겨쓰는 상징은 '말'이다. 묘사의 형식을 빌어 표현하는 대신, 다분히 실험적인 형상을 띠고 있다. 무수한 점으로 말의 형상을 완성하는 식이다. 최소한의 의미만 지니고 있는 점을 통해 완벽한 실체일 수 없는 자아에 대한 존재감을 표현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결국 화가가 지향하는 것은 우주(COSMOS)라는 공간속에서 나의 존재에 대한 의미찾기다. 최근 몇년동안 개인전에서 걸어온 타이틀 'COSMOS'가 이를 내포하고 있다. 1년여 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엔 인천을 벗어 서울 나들이를 결행했다. 종로 인사동 초입의 '갤러리 고도'로부터 초대전 제의를 받았다. 타이틀이 역시나 'COSMOS-거닐다'다. 지난 20일 시작 26일까지 이어간다.


#. 나무에 꽂히다
"그림이 많이 밝아졌습니다. 가능한 힘을 빼려고 했습니다. 몇 몇 작품에서는 말(馬)을 거두기도 했지요. 다분히 의도적입니다."
인터뷰 첫 마디에서 작가는 달라진 요소요소를 짚었다.
강렬한 명도, 색감, 형태 등의 대비를 추구해왔던 이전의 작품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편안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관람자에 대한 배려가 읽히기까지 한다.
"나무에 눈이 갔습니다. 사실을 숲은 보고 싶었습니다. 나무를 하나하나 보는 것이 숲으로 다가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지요. 내 주위에 있는 소중한 것들이 곧 나무라는 생각에서 입니다. 나 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다가간 숲속에 내가 있고 그 숲이 곧 우주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가 줄곧 고민해온 우주에서의 존재찾기로 이어진다. 그 상징이 이번엔 나무인 것이다.
대학 연구실이 있는 춘천에는 유독 자작나무가 많았다.
나무 한그루를 그렸다(작품 '나무하나'). 뭔가 부족함이 있어 그 다음엔 두 그루를 그렸다(작품 '나무둘'). 다음엔 세 그루(작품 '나무 셋'), 그리고 다섯 그루(작품 '나무다섯')로 이어갔다. 때론 대상이 등나무 아래 핀 꽃들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 초여름부터 꼬박 반년을 그려나갔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반성으로 시작한 작업인데 내내 즐거웠습니다. 자연에 대해 사색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반성하는 느낌으로 그렸습니다. 지향점은 예나 지금이나 자연과 우주와 합일하는 나의 존재에 대한 접근이지요. 단 이번 작품 몇몇에서는 공간 속에 나를 넣는 것을 유보시켰습니다."


#. 우주를 거니는 말
말에 대한 관심은 대학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목마에서 출발했다. 도시빈민가 아이들의 놀이문화에 대한 상징성을 담으려 놀이기구 흔들목마를 골랐다.
한단계 나아가 정지된 화면속에 움직임과 시간성을 넣으려는 시도를 했다. 같은 형태를 여러번 겹쳐 그리거나 붓질을 더했다. 대학 졸업작품 '떨림'에서다.
이후 목마는 생명이 있는 말로 나아간다. 한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듯한 형상이다. 사실적인 묘사 대신 점으로 형상을 완성한 것이 특별하다.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가 먼지와도 같다는 사고에서 출발했습니다. 역으로 미미한 존재인 '나'로부터 접근한다면 소유하고 있는 우주가 있는 것이지요."
말은 곧 나에 대한 치환이다. 화폭에서 걸어다니는 말은 우주공간에서 사색하는 나인 것이다.
이에 대한 장준석 미술평론가의 해석은 이렇다.
"내면으로부터 충만한 말에 대한 회화적 이미지는 다양한 각도와 느낌을 담은 실험성 진한 말의 형상으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 작가가 그린 말은 말 본연이 아닌, 현실에서 벗어난 상상과 자유함의 근원이다. 현실 너머 진실을 그리고자 박동진은 관조적 자세로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말은 현실의 세계와 이론적으로 대립되는 또 다른 세계를 부유하는 초월의 세계로 가는 수단일 수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예의 말이 있다. 나무와 풀과 겹쳐지기도, 또 다른 공간에 있는 양 거닐기도 한다.
전시를 펴고 있는 와중에 화가는 다음 전시 구상을 이야기한다.
"장르를 기존 평면에서 설치미술쪽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말의 형상을 입체로 세운뒤 나무를 드로잉한 작품들로 숲은 채워보고 싶습니다."


#. 즐거운 사색
이번 작품 속에서 화가가 꼽는 도드라진 변화점은 색에 대한 친밀감 확대다.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거듭 강조한다.
"스스로를 분류하면 예민한 편에 속합니다. 미술사적인 해석을 더해 작업을 해왔다고 할 수 있지요. 작품은 중후하고 커야한다는 고정관념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러려면 대단한 사람만이 존재해야한다고 생각했지요. 이 부분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자기반성을 한 것이지요."
여전히 욕심을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더 빼내야 한다고 말한다.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배경을 평면공간으로 바꾼다든 가 나름대로 노력은 했습니다만 여전히 욕심을 다 버리지 못했습니다." 말끝에 웃음을 단다.
이전 전시를 만든 작가로서 관람자에게 거는 기대를 묻자 돌아오는 답이 소박하다.
"그림은 많은 해석을 요구하곤 하지요. 상징을 던진 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수수께끼를 풀도록 하는 식이죠. 내 그림들은 즐거움이었으면 합니다. 대상이 주는 상징성을 그대로 따라가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혼자 거닐면서 즐거운 사색에 빠져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김경수기자 kk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