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언 ▧ 장행연 한중문화협회인천지회장
국세청은 초임 세무서장 인사에 토착비리 근절을 목적으로 향피제(鄕避制)를 적용했다고 전한다. 어느 국세청장의 부인이 경영하는 미술관에서 관련 기업체와 그림 한 장에 수천만원씩 거래가 됐다는 검찰 조사결과가 발표돼 국민들의 공분을 사더니 그 결과물로 제시된 것이 향피제인 듯 싶다.

우리의 기억으로는 군사정부 때에도 사법부의 부조리 척결 방법으로 검찰 일반직의 인사를 철저히 연고지 배치를 배제하고 대대적인 순환근무 제도를 선택해 전국 규모의 순환발령을 단행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검찰행정이 경직되고 '아니면 말고'식의 관행이 굳어져 오히려 법률 수요자들의 불편을 가중시켰다는 것이 정평이었다.

원래 향피제를 따지고 보면 지연, 학연, 혈연 등이 얽히게 되면 공정무사한 공무집행이 어렵고 부정과 야합할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 아래 이를 원초적으로 배제한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논거는 우리 역사에 비극을 가져왔던 연좌제(連坐制)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는 관제 공산당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연좌제가 인간 개인에게 준 상처가 치명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심각했던 것은 두말할 나위 없고 이로 인해 민족 분열의 기폭제가 됐으며 국가적인 에너지 소비로 연결됐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기관장 중에서도 검찰, 경찰, 감사원, 국세청 등의 수장들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포부와 그 조직의 능률 제고를 위한다는 방안이 국민 앞에 제시된다. 이번 국세청의 향피제는 충남 홍성 사건으로 자극 받은 이명박 대통령의 불호령 속에서 제시된 방안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런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생각해 낸 발상이 겨우 향피제란 말인가.

이것은 국민의 본성을 범죄유착적 측면에서만 접근했을 뿐 고향 발전을 위하는 미풍양속의 헌신과 멸사봉공의 순수한 정신을 생명처럼 생각하는 대다수 세무 공무원들의 진정성을 간과한, 그것도 수십 년 전 군사정부에서 실시한 퇴물 행정시책의 재판이 아닌지 모르겠다.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지금은 과학적인 산술시대에 있어 과세자료 관리나 세원 관리가 치밀하고 정교해 인성이 개입할 수 없는 과학세정의 시대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주목해 보면 그 동안의 세정 의혹 사건들은 재벌과의 부정거래이거나 고위층에서 입신 출세를 위해 권력에 유착하려는 야망으로 이뤄진 범죄로 밝혀졌을 뿐 지연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는 것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앞으로 국부의 유출은 제도와 과학적 운영으로 보완돼야 할 일이지 일부 부정세리 만을 핑계로 들어 혈연, 지연, 학연 등의 단절이 토착 비리의 근절책이라고 내세우는 것은 한심한 궁책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새로 임명되는 국세청의 수장은 임명권자의 비위에 따른 미봉 세정보다는 향토를 아끼고 사랑하는 순수한 세리들이 맘껏 고향에서도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