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예술인 30 - 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 윤학원
무대·조명활용 '공간음악' 시도 … 세계 속 인천 알리기 분주




줄을 맞춰 차렷 자세로 노래를 부르던 합창단이 갑자기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영화 '시스터 액트'의 한 장면이다. 이런 장면을 꼭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윤학원 예술감독이 이끌고 있는 인천시립합창단은 이렇게 춤을 추거나, 노래 중간 율동을 더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합창은 서서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윤 감독은 20여 년 전 '움직이는 합창단'을 시도했다. 당시는 파격적이었지만 지금은 많은 합창단이 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난 16일 공연한 '쑥덕쑥덕 크리스마스'에서 합창단으로는 최초로 정통 뮤지컬을 선보이며 또 한 번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 움직이는 합창단

윤 감독이 움직이는 합창단을 시도했던 것은 40여년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1970년 지휘자로 '선명회 어린이합창단'을 이끌면서부터다.
"어린이들의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노래하는데 흥미를 더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이유를 달았다.
1983년 대우합창단이 창단하면서 지휘를 맡았던 그는 성인 합창단에도 똑같은 방식을 시도했다. 하지만 주위 반응은 냉랭했다.
"당시 각종 음악 잡지나 신문 등에선 프로 합창단을 망쳐놓는다는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역시 어린이 합창단 지휘자출신이라 별 수 없다는 소리까지 들었지요."
윤 감독은 단순히 몸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등장할 때 단원들이 객석에서 걸어 나오는 등 공연장 구석구석을 활용하는 시도를 해나갔다.
그 결과 대우합창단의 공연은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그는 "85년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세계합창대회'에 한국 프로 합창단으로는 처음 참가하게 됐다"며 "알려지지 않은 팀이라 처음엔 실력을 의심하던 분위기였는데 마지막에는 '세계합창연합회'로부터 동아시아 최고 팀으로 인정을 받았다"라고 회상했다.
윤학원이라는 이름과 '움직이는 합창단'을 세계무대에 등장시킨 순간이었다.



#. 세계 속 인천시립합창단

이제 내년이면 지휘자겸 예술감독으로 인천시립합창단을 이끌어 온 지 15년이 된다. 처음 인천에 왔을 당시 합창단은 6개월 동안 해체된 상태였다.
"처음엔 많이 망설이기도 했지만 관장님의 권유와 새로운 단원들로 구성된다고 해서 결심했습니다."
진통 끝에 탄생한 인천시립합창단은 현재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최고 수준의 합창단으로 발전했다.
97년 벨기에에서 열린 '세계합창연합회 창립 15주년기념 세계 합창제'를 시작으로 유럽과 미주, 아시아를 넘나들며 수많은 공연으로 인천이라는 이름뿐 아니라 한국합창단으로서의 자긍심을 드높였다.
특히 2005년 4월 미국 LA·워싱턴·필라델피아·뉴욕 4개 도시 순회연주, 2007년 일본 3대도시 순회연주회, 2008년 도쿄 오페라시티콘서트홀 연주와 일본 NHK방송국 풀(full)프로그램 녹화방영은 시립합창단이 세계무대에서 그 실력을 더욱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그러나 10년 넘게 한 단체의 감독직을 맡고 있다 보니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5년 전 인천종합문예회관 운영위원회에서 감독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윤 감독은 "그때 단원들을 비롯한 시민 여러분이 나서 주었다"라며 "지금까지 합창단을 잘 이끌어 왔는데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바꾸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해줬다"고 전했다.
그는 "무엇보다 단원들과 시민들이 그렇게 말해 줬다는 사실에 무척 감사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한차례 고비를 넘긴 시립합창단은 지난 3월 세계 합창인들의 꿈의 무대로 알려진 '미국합창지휘자총연합회(ACDA Convention)'의 창립 50주년 기념 무대에 섰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5천여 명의 합창지휘자들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초청된 인천시립합창단에게 기립박수와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이에 힘입어 2010년 3월에 'ACDA 서부지회 컨퍼런스'에 이미 초청을 받았다.



#. 한국적·세계적·현대적

처음 시립합창단을 맡으면서 강조한 것이 있다. 바로 전임작곡가의 필요성이었다.
"세계무대를 겪어보니 모두들 자신들의 곡으로 노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재즈를 미국팀이 제일 잘 하고 바흐곡을 독일이 제일 잘 하듯 우리도 우리 노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재창단 2년되는 시점부터 전임으로 우효원 작곡가를 얻게됐다.
창작합창곡이 여럿이다. 그중 얼마 전 완성한 '8소성(笑聲)'은 작곡가와 윤감독이 특별히 심혈을 기울인 곡이다.
"8가지 웃음소리라는 뜻입니다. 제목 그대로 언어 없이 웃음소리로만 노래를 이어 갑니다. 세계가 다 함께 공감하려면 언어적인 부분은 배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이 곡은 공연 때마다 놀라움과 찬사라는 두가지 반응을 동시에 이끌어 내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 그리고 현대적인 것이다.
"아리랑의 경우, 단순히 정면을 보고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맞춰 3개 팀으로 나눠 노래하다 합쳐지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뿐만아니라 조명도 활용하는 등 '공간음악'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시립합창단은 내년 10월 '2010폴리폴리아 세계합창음악박람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이 행사에서는 여러 합창단이 모여 노래만 부르는 것뿐 아니라 세계 50여 개국의 120명의 기획사 관계자들 앞에서 쇼케이스 연다.
선택되면 45일 동안 전 유럽을 순회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합창은 각기 다른 소리를 하나로 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수많은 소리가 마침내 한 사람의 소리처럼 조화되면 그 무엇보다 아름답습니다"
잔잔한 미소에서 고희가 넘은 나이에도 늘 음악만을 생각하는 한결같은 마음이 전해진다.

/심영주 인턴기자 blog.itimes.co.kr/yjs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