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경제
세계경제가 위기국면을 맞은 지 1년여가 지났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경제의 앞길이 보이는 시점에서 향후 유사 위기에 대비코자 과연 우리는 이번 위기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무얼 실천에 옮겼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두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가계부문의 구조조정이고, 다른 하나는 위기관리시스템의 개선이다.
먼저 이번 위기의 가장 큰 요인으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부채 의존적 경제구조가 꼽힌다. 우리 역시 비슷한 점이 없지 않았다. 참여정부 이래 부동산가격이 상승하고 시중유동성은 넘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문제는 유동성이 기업보다는 가계에 집중된 점이다. 기업들은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투자를 꺼리는 가운데 단단한 내실경영으로 일부에선 적잖은 잉여자금까지 확보한 반면, 가계는 고공행진을 계속한 부동산가격 때문에 차입을 늘리고 내수부진 탓에 자영업을 중심으로 생계형 대출이 크게 늘어났다. 이처럼 부채형태로 집중 투입된 유동성은 가계의 건전성을 떨어뜨리고 나아가 사회가 부동산투기 게임에 빠져드는 불쏘시개 역할을 담당한 것이 1년전 모습이다.
현재는 어떤가? 부동산가격이 일시 떨어지기도 했지만, 위기를 전후해 부동산부문의 급속한 경기냉각효과를 진정시키려다 보니 다시 상승 반전해 어떤 지역은 위기전 고점을 넘어섰다. 유동성 쪽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비상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현재 시중에 풀린 돈은 그냥 두면 경기가 평시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눈덩이를 굴리듯 자산가격 인플레를 부추길 것이다. 경기상승에 한 발 앞서 절묘하게 시중유동성을 제어하긴 어렵다. 지금 정책기준금리가 2%인데 위기전의 4∼5%까지 갈 길은 얼마나 험난한 것인가.
특히나 가계의 높은 부채의존도를 낮추는 것은 지난 10년간 지속된 경제의 자금흐름을 바꾸는 일이라 더더욱 어려운 과제다. 부동산을 줄여서 금융부채를 갚아나가도록 하는, 이른바 가계의 금리민감도를 높이는 사회적 논의가 너무 미진하다. 가계가 구조조정에 실패해 향후 높아지는 금리로 위기에 봉착하거나 금리정상화를 어렵게 한다면, 우리경제의 성장잠재력까지 잠식할 소지가 있다. 금융은 물론 실물부문의 안정을 위해서도 가계부문 구조조정은 시급하다.
두 번째로 배워야 할 것은 국가적 금융위기를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이 긴요하다는 점이다. 많은 위기징후가 사회내에서 파악되고 통제되겠지만 이미 발생한 위기란 기존의 시스템에 허점이 있음을 방증한다. 우리나라의 기존 감시시스템도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으로 나뉘어 있는 한편 국내금융과 국제금융,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통화정책과 금융감독 등 각 영역간 유기적 연계성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선진 주요국에 못지않게 많은 제도개선이 필요함에도, 최근 우리나라는 학습의욕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각국은 금융체계 전반에 걸쳐 시스템리스크를 진단하고 위기의 초기국면에서 정확한 판단과 처방을 가능하게 하려면 중앙은행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대체로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관계기관과 국회에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논의를 진행해 왔지만, 지금까지는 만족스럽지 않다.
불이 나서 출동한 소방관(중앙은행)의 임무가 단지 소방차에 담긴 물만 건네주는 게 아니고 화재(금융위기)를 진압하는 것이라면, 화재현장의 지형지물과 건축물 구조(금융상황과 관련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하자는 한국은행법 개정안이 경우에 어긋나는 것인가?
인허가, 규제, 제재와 같은 행정권력으로서가 아니라 금융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창을 하나 만들어달라는 이야기다. 일부에서는 밥그릇싸움으로 이해하고, 국회상임위원회간 이견이 생기고, 이해관계가 걸린 금융기관이나 협회가 반대의견을 표명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사회의 제대로 된 문제해결능력이 발휘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하운 한국은행 인천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