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신문·방송 기자들이 중구 북성동의 옛 '청관(淸館)'을 '차이나타운'이라고 줄곧 보도하는 바람에 '청관'이 '차이나타운'으로 불려진 지도 여러 해가 되었다. 그러나 필자 연배들에게는 아무래도 낯선 이름이다.
'중국'을 느닷없이 '지나(支那)'의 서양식 발음인 '차이나'라 부르는 것도 그렇고, 한자를 배우고 삼국지를 읽으며 세시풍속을 함께 지내는 판에 갑자기 그들의 문화를 '이국적' 어쩌고 하는 것도 호들갑을 떠는 것 같다.
그러나 주택문화는 달라 일제 하 '선전(鮮展ㆍ조선미술전람회)' 시절부터 회화의 소재가 돼 왔다. 그 시절의 도록을 보면 많은 이들이 청관거리를 그렸고, 광복 후에도 미술 지망생은 으레 청관에 가 회화 수업을 했다.
그뿐 아니다. 전시회도 줄곧 중구에 있는 인천공회당이나 우리예술관, 인천시공보관 등에서 열렸고, 그 활동의 주역이었던 미술인들도 스스로를 '청관파(淸館派)'라 불렀다. 그렇듯 중구는 인천 미술의 요람이었다.
그럼에도 최근 시립미술관을 연고도 없는 연수구의 돌산을 뚫어 만들자거나 2016년에야 반환될까 말까 한 부평구의 미군부대 터에 짓자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급하다고 판잣집 짓듯이 멋대로 지을 수는 없다.
애써 지역 미술의 역사성와 연고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문화는 전통에 뿌리를 내려야 비로소 사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근대문화'와 '미술 자산'은 중구에 돌려주어야 한다. 마치 지방마다 '경제자유구역'을 나눠 갖듯 다른 구(區)가 욕심 낼 일이 아니다. '미술관 있는 내항(內港)',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렐 풍경 아닌가?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