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눈
학교장에게 교육행정과 관련한 학교현장의 애로점을 물으면 십중팔구는 공문이 너무 많다고 답한다. 특히 처리해야 할 공문 중에는 교원의 업무를 경감해 주겠다며 교원의 공문처리 실태를 보고하라는 공문이 다시 생기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보게 된다.
학교는 공기관이며 공공의 목적을 증진하여야 하고 학교행정은 공문서에 의해 이루어짐을 모르는 바 아니다. 특히나 요즘은 통신망이 발달하여 종이문서 대신 전자문서로 신속하게 공문을 접수하고 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발달되어 있다.
이 전자문서가 외양으로는 업무 경감에 도움을 주는 듯 싶기도 하다. 하지만 신속 편리함 때문에 수시로 보고해야 하는 건수는 날로 많아지고 있다. 갑자기 시간 내에 보고해야 하는 까다로운 보고문서가 발생할 경우 그 피해가 어디까지 가는지 그림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
민주주의 꽃은 지방자치의 실현에 있다는 말에 의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데 교육자치를 주창하고 교육은 정치적 중립과 어떤 정치의 수단이 되어서 안 된다는 것 또한 익히 들어왔지만, 교육자치와 학교 현장은 거꾸로 가고 있다. 도의원, 교육위원, 국회의원의 그 많은 감사 자료 요구 문건을 대하며 그에 대한 자료가 우리 청소년의 바른 성장에 어떻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인지, 아이들의 수업과 생활 속에 있어야 할 교원의 업무를 얼마나 지난하게 하는지를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공문은 공적 문서이고 중요한 교육 자료이다. 그러나 학교가 목적으로 하는 공익의 증진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헌법에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소이연은 이에 있을 것이다.
왼손잡이 학생이 몇 명인가 자료를 요구한 공문에 담임교사는 학급에 일일이 학생들 숫자를 파악하고 이것을 집계하고 기안해서 결재를 받아 제출한다. 이 일을 요구한 분의 생각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조사가 한 학교, 도 전체의 청소년 실태를 이해하는데 어떤 도움을 주고 청소년의 성장에 어떻게 기여하겠다는 것인가? 얼마 전 학교에서 특별 초과 근무한 일수와 시간을 제출하라는 도의회 요구 자료 역시 이런 맥락으로 보면 아연할 수밖에 없다.
민의의 대표 한 분 한 분이 요구한 자료의 일을 생각해 볼 때 그 자료가 과연 우리 교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일로 해서 학생의 현재 모습과 미래를 고민하는 교원의 시간을 얼마나 뺏고 있는지 아는가?
감사 자료 요구는 학교가 공교육 기관이니 그렇다 하자. 요즘 대학 수학능력 시험을 준비하는 고교 현장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적군을 무찌르는 전쟁이 아니라 수학능력 시험을 공정하게 관리하기 위한 교원들의 업무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대학 입학에 관한 업무를 왜 고교에서 전담해야 하는지, 그것도 대학에서 대학 자율권을 주장하며 대학에 일임할 것을 요구하는데 대학 입학 사정자료 제공에 진력해야 하는 교원의 업무가 과연 우리 학생들의 진로를 위한 일이라는 사명감으로 강요해서 되는지, 의문의 의문이 꼬리를 문다.
언급하기 부끄러운 일이지만 대학에서는 일선 고교에서 밤잠도 이루지 못하며 고생고생 하여 만든 자료를 토대로 고액의 전형료를 받으며 대입 전형을 한다. 이 일을 치르는 고등학교에서 종사 요원 선생님들이 새벽부터 밤에 이르기까지 급양비 명목의 5,000원 짜리 음식을 먹으며 교원의 긍지를 갖으라고 한다. '고등학교는 중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교육 및 기초적인 전문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법령과는 달리 학교 현장은 참 안타깝기만 하다.
교원 업무 경감이라는 논의를 하는데 이렇게 품위 없는 사설을 늘어놓는 일이 너무 부끄럽다. 그러나 이 말은 목이 터지도록 외치고 싶다.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이며 희망이다. 우리 교원이 청소년을 목적으로 교육하는 일에 전념토록 제발 유념해 달라."


/이덕진 경기도 효원고등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