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녀는 보위부에서 예심을 받느라 시달리고, 또 도 안전국으로 이송되어 이 구류장 저 구류장으로 떠돌아다니며 죽을 고생을 해서 달거리 생각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어쩌면 곽인구 하사와 잠자리를 같이 한 이후 자기 뱃속에 아기가 들어섰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녀는 죽은 김영달 상사와 같이 보낸 신혼시절을 되돌아보다 눈 밑을 꼭꼭 눌러댔다. 만약, 곽인구 하사의 씨앗이 그녀의 뱃속에 점지되었다면 세대주가 점지시켜준 아이라 생각하고 낳아서 키울 생각이었다. 세대주와 같이 살 때 그녀는 엄청 아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남이 낳아 놓은 아기도 입양해 키울 생각을 했는데 내가 배불러서 아기를 낳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는 자기가 만약 아기를 가졌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고이 낳아서 키울 것이라고 굳게 마음먹었다. 물론 혼자 몸으로 아기를 낳는 일이 힘은 들겠지만 일단 아기를 낳아 놓기만 하면 공화국 땅은 어디를 가든 가는 곳마다 탁아소가 있으니까 키우는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기 엄마가 되어 젖을 먹인다고 생각하니 자꾸 웃음이 끓어올랐다.

 려자로 태어나 배태를 해보지 않으면 진정한 려자가 될 수 없다고 했는데 만약 나의 마른 구역질이 아기를 밴 조짐이라면 나도 이참에 아기를 낳아본 려자가 되고 싶어….

 그런 행복한 생각에 젖어 한나절을 지루하지 않게 실려왔다고 생각하며 치마 자락에 묻고 있던 고개를 들었는데 호송원의 악다구니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이보라! 빨리 내리디 않고 뭐 하는 기야?』

 성복순 피고는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함께 타고 온 사람들은 다 내렸는지, 화물차 짐칸에는 자기 혼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어마나! 같이 내리자고 말도 한 마디 해주지 않고 어쩜 길케 자기들만 내렸을까?』

 성복순 동무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차에서 내렸다. 먼저 화물자동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아까 수용소 정문을 통과해 한 10리는 안으로 들어온 것 같다며 시야를 막고 있는 앞산을 바라보며 허리를 툭툭 쳐댔다. 모두들 오랜 시간 덜커덩거리는 화물자동차를 타고 와서 피로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도 옆구리가 뒤틀리고 엉치뼈가 들쑤시는 것 같았다. 그녀는 버릇처럼 선 채로 한 손으로 옆구리를 툭툭 치며 벼락 맞은 것처럼 산의 한쪽 자락이 떨어져 나간 돌산을 바라보며 잠시 허리를 폈다.

 그때 앞산 중턱에서 남포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잇따라 와르르 하고 돌 무너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 소리와 함께 산허리 한쪽 옆에서 연기처럼 허연 돌가루 날리는 모습이 보이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돌덩이가 굴러 내리던 산비탈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올라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