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일생은 사관장이 화물자동차 전복사고로 현장에서 즉사함으로써 소생할 수 있는 희망마저 완전히 뭉그러졌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상소해도 자기 같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며 자기 죄를 인정하듯 손도장을 찍어 주었다. 그리고는 이틀 후 평안남도 개천시에 있는 사회안전부 제1교화소로 떠나갔다.

 강영실 피고의 사주를 받아 인구와 같이 육체 관계를 가진 성복순 피고는 그녀의 친정 부모가 거주하고 있는 평안북도 동림군 철산리에 있는 화강암채석장으로 이송되어 6개월간 무임금 노동을 하며 혁명화 과정을 밟게 된다는 판결문이 떨어졌다.

 그녀는 강영실 동무 앞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 보일 수가 없어서 겉으로는 될 대로 되어라는 식으로 새금천장마당 아낙들이 보따리에 싸준 기름사탕과 떡을 씹으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무임금 노동 6개월은 굴러가도 견딜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계호원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때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다 강영실 동무가 교화소로 떠난 그 이튿날 아침 화강암채석장으로 이송되는 10여 명의 혁명화 대상자들과 함께 화물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덜커덩거리는 낡은 화물자동차에 실려 평안북도 동림군 철산리 화강암채석장으로 이동될 때까지도 그녀는 자신의 몸에 태기(胎氣)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보위부에 끌려간 이후부터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계속 배고픈 생활이 계속되어서 새금천장마당 동무들이 보따리에 싸준 송편과 기름사탕이 그렇게 맛이 있는 줄 알았는데 덜커덩거리는 화물자동차에 실려 화강암채석장으로 가면서 곰곰 생각해 보니까 자신이 떡과 사탕을 먹어도 너무 많이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흡사 뱃속에 거랑뱅이(거지)가 들어앉아 있는 느낌이었고, 들이치는 바람결에 실려 화물자동차의 기름냄새가 밀려올 때는 마른 구역질이 밀려와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정말 이상하다. 아이 밴 간나처럼 요사이는 와 일케 마른 구역질이 치솟을까?

 그녀는 덜커덩거리는 화물자동차 짐칸에 앉아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고통스럽게 마른 구역질을 참아댔다. 그런데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런 와중에서도 자꾸 떡과 기름사탕이 먹고 싶은 것이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덜커덩거리는 화물자동차 짐칸에 실려가면서도 자꾸 그런 음식들이 먹고 싶은가 말이다. 그녀는 먹어도 먹어도 끝도 없이 입이 당기는 자신의 이상식성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때부터 자기 몸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아이를 배었는가? 한번도 거른 적이 없는 달거리를 요사이는 왜 한동안 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달거리를 한 날을 되짚어보니까 서너 달 된 것 같았다. 곽인구 하사와 잠자리를 같이 한 며칠 전에도 달거리를 한 기억이 있는데 그 이후는 한번도 달거리를 한 기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