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잠이 안 오세요? 그럼 제가 재미난 얘기 해드릴까요?"

그러자 할머니는 좋다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싫다도 아닌 눈으로 나를 무연히 쳐다보셨다.
"어 그러고 보니 할머니 모자 벗으셨네. 자~알 하셨어요." "숭하지…."
"숭하긴요, 할머니 이쁘세요."
"그래도 숭해서…."

다시 모자를 쓰려하는 할머니 손을 꼭 쥐었다.
"안 그래 할머니. 남들이 무슨 상관이야…."

난소에 기형종이 있다하여 수술을 받기위해 서울대병원에 며칠 입원해 있었다. 5명이 함께 쓰는 다인실에 나 빼고 모두 암환자들이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눕는데 옆 침대 할머니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말을 건네셨다.
"이쁘게 생긴 새댁이 우짠 일이고. 아 놀러 왔나?"
헌 댁도 한참 헌 댁인 나보고 새댁이란다. 게다가 출산하러온 이쁜 새댁이라니. 할머니의 그 말씀에 난 수술에 대한 무섬증이 훨훨 사라졌다.

어느 산골 외딴집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어요.
할아버지는 밭에 나가 일하고, 할머니는 집에서 길쌈을 했지요.

할아버지가 밭에서 돌아오면 할머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 댔어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야기라는 건 아무것도 할 줄 몰랐어요.
어느 날 할머니는 한 가지 꾀를 냈어요.

할머니는 정성껏 짜 두었던 무명 한 필을 할아버지 앞에 꺼내 놓았지요.
"영감, 오늘 장에 가서 이 무명 한 필하고 이야기 한자리 하고 바꿔 오세요."

"어떻게 무명 한필하고 이야기 한자리하고 바꾼담."
가만히 듣고 계시던 할머니가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냐며 나를 쳐다보셨다. "우와 할머니도 이 책 읽으셨어요? 이거 '훨훨 간다'라는 그림책 내용인데."

"읽긴 뭘…요즘 세상에 그리 어수룩한 노인네들이 어디 있어."
"할머니, 그래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귀여우시잖아요."

"그게 귀여운겨? 모질란거지. 그래서 어찌 되었어? 누가 사가긴 했어?"
"이사람 저 사람이 와서 보고 갔지만 무명 한 필을 사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안사지 그럼. 무명 한필 값이 겨우 이야기 한자리라는데 모다 노망난 노인네라고 할거 아닌가배."

저녁때가 되자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장터는 텅 비어 버렸어요.
할아버지는 할머니한테 좋은 이야기 한자리를 가지고 가지 못해 걱정이 되었어요.

"그 봐 내 말이 맞지"
하실 줄 알았는데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바라다보니 할머니는 어느새 고른 숨을 쌕쌕 고시며 주무시고 계셨다.
찬바람 들세라 이불을 당겨 덮어드리니 나도 모르게 토닥토닥
"자장 자장 우리 할매. 자장 자장 잘도 잔다. 자장 자장 자장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