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시스】배상현 기자 = 다섯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긴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는 세월은 넘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은 때때로 "나는 다섯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말을 했다. 김대중도서관에는 6년여의 감옥생활과 10년여의 망명과 연금생활 등과 함께 이같은 고난의 과정을 자료로 소장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첫번째 죽을 고비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게 체포돼 감옥에 갇혔는데, 총살직전에 기적적으로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두번째는 1971년 4월 대통령선거에 이어, 5월에 실시된 제8대 국회의원 선거때 서울 후보지원 유세를 위해 서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달린 광주-목포간 도로 무안지점에서 느닷없이 돌진한 14t짜리 대형트럭에 받혀 교통사고를 당했다.

트럭은 김 전 대통령의 차를 부딪힌 후 뒤에서 달리던 택시와 정면출동해 택시에 타고 있던 세명은 현장에서 즉사하고 나머지 세명은 중상을 입어 당시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사고의 후유증으로 평생 지팡이 신세를 지게 됐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1973년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납치사건과 관련돼 있다. 일본 NHK가 구성한 김대중 자서전에 따르면 일본의 그랜드팔레스호텔 복도에서 김 전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의 요원들에게 납치돼 처음에는 호텔방 욕실에서 토막살인될 뻔 했다.

그들은 여의치 않자 김 전 대통령을 배로 옮겨 손발을 묶고 현해탄 한가운데에서 수장하려 했지만 미국의 개입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 사건과 관련, 김 전 대통령은 도쿄 피납 생환 36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서거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다섯 번째 고비는 1980년 신군부에 의한 사형선고이다. 5.18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났던 하루전날인 5월17일 김 전 대통령은 정권전복을 꾀한 주목자로 지명돼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끌려간다.

이어 군법회의와 대법원에서 내란음모죄 등 7가지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국내외의 구명운동과 미국의 개입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미국 망명길로 오르면서 살아날 수 있었다.

다섯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김 전 대통령은 불사조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가는 세월의 벽은 넘지 못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