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아프고 몸 아픈 사람들과 읽는 책 -'명애와 다래'(이형진 글·그림, 느림보 출간)

"선생님, 저, 대장내시경 수면으로 하는 거 맞지요?"

지금쯤 수면제를 맞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저 누워만 있으란다. 불안하다.
"김인자님, 수면내시경 맞아요. 과장님 오시면 마취 바로 들어갈 거예요."

안심이다. 십 년 전에 수면으로 안하고 그냥 했다가 거의 죽다 살아난 기억이 있다. 분주하게 간호사들이 이리저리 오가고 그 와중에 냉장고에서 토마토 주스를 따라 마시는 간호사도 있다. 시원하겠다. 저거 한입 마시면 여한이 없겠다. 어제 먹은 장세척제에 거품제거제 때문에 입안이 바싹바싹 탄다. 아이구 죽겠다. 병원바지를 입고 모로 돌아누워 있으니 기분이 이상하다. 추수 끝난 논에 툭툭 던져진 마른 볏단 같다. 언제 하려나? 매도 빨리 맞는 게 나을 건데….

표본실의 청개구리 같다. 자꾸만 무섬증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간호사들의 신발만 바라보며 맥없이 누워있는데 드디어 남자구두가 들어섰다. 아, 이제 하는구나.
익숙한 얼굴. 3내과 과장님이다. "겁내실 거 없어요. 한잠 푹 주무십시오."

일주일을 넘게 설사를 해서 병원에 갔다.
첫날은 채혈에 대변검사 엑스레이

둘째 날은 채혈 대변검사 초음파

셋째 날 위내시경 대장내시경. CT촬영

그동안 내 몸을 너무 혹사시켰다. 그래서 화가 많이 났나보다. 삐지게도 생겼다. 맘도 풀어줄 겸 내 몸에 상을 주기로 했다. 나에게 책을 읽어주기로 했다. 누구에게 읽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만을 위해 책을 골랐다. 그래서 고른 책이 '명애와 다래'다.

처음엔 천천히 눈으로 읽고 두 번짼 소리 내어 읽었다.
그러고도 또 읽고 싶어져 세 번째는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 딸아이에게 읽어 달라했다.

오늘도 할머니 방문은 열려 있었어.
아빠 목소리가 들려왔어.
"어머니 좋아하시는 홍시라도 챙겨드려요."
엄마가 말했어.
"얼려 놓은 것도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홍시 나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내일은 내가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리다."

"엄마도 홍시 먹고 싶어?"

작은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던 아이가 책에서 눈도 떼지 않고 말했다.
"아니. 엄만 물렁거리는 거 싫어."

"그렇지? 그럼 엄마 아이스크림 먹을래?"
아냐 됐어. 그러고 보니 아이 눈이 빨갛다.

"그래 먹자. 민지 뭐 먹을래? 엄마지갑에 돈 있어. 가져가 사와"
"아냐 나도 돈 있어, 엄마…."

언제 저렇게 컸지. 신발을 꿰신고 나가는 아이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다래처럼 민지도 놀이공원에 가고 싶을건데. 내일은 애들 데리고 가까운 동물원에라도 다녀와야겠다. /문화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