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7월 15일 인천일보 창간 이후 지난 21년 동안 인천지역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서울, 부산에 이어 인구 275만의 전국 3대 도시로 성장한 인천의 숨가빴던 21년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88>
경기도 옹진군 용유면 용유도~영종면 삼목도를 잇는 연륙도로가 개통돼 섬 주민들의 생활이 크게 바뀌었다. 길이 4천340m 2차로의 연륙도로 건설엔 50억5천800만 원의 예산이 투입됐으며 1984년 10월 착공 후 4년여 만에 완공했다.

<1989>
가축사료 원료를 싣고 인천항 1부두에 입항한 5천300t급 파나마 선적 화물선에서 유출된 벙커C유와 폐유가 인천항 1~8부두 1.5㎞ 구간 항만 내수면 중 안벽 쪽을 오염시켰다. 부두 인근에 2천400여 m의 오일펜스를 설치하는 등 기름 제거 작업에만 20여 일이 걸렸다.

<1990>
인천·경기·서울지역에 사흘 간 최고 500㎜ 이상의 많은 비가 내려 65년 만에 최악의 물난리로 기록됐다. 인천에서만 건물 14채가 무너지고 3채는 일부분 무너지는 등 100여 채가 침수되고 207가구 800여 명의 이재민을 냈다.

<1991>
인천지역 교통의 한 축을 담당할 지하철 개통을 추진하기 위해 인천시에 인천지하철 기획단이 발족했다. 시는 이듬해 인천지하철공사와 지하철건설본부를 설립해 1993년 인천도시철도1호선 공사에 본격 착수했다.

<1992>
인천~백령도 간 항로를 운항하는 초고속 여객선 데모크라시 호가 인천앞바다에 등장했다. 시속 92㎞ 속력의 324t급 데모크라시 호는 인천~백령도 간 운항시간을 종전 12~13시간에서 3~4시간대로 단축시켰다.

<1993>
부산항에 이어 인천항에서도 10월 7일부터 수출입 컨테이너화물에 대한 부두직통관제가 실시됐다. 부두직통관제는 하역과 동시에 화물을 통관시키는 제도로, 이 제도 실시로 인천항을 이용하는 인천·경기지역 무역업계의 물류비 절감에 기여했다.

<1994>
인천시 북구청과 부천시 세무공무원들이 오랜동안 조직적으로 수십억 원의 취·등록세를 착복한 사건이 드러나 온 나라가 들썩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무 조사는 전국으로 확대됐고 최기선 당시 관선 인천시장은 책임을 지고 취임 1년6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1995>
인천이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명칭이 바뀌었다. 3월엔 경기도 강화군 전역, 김포시 검단면, 옹진군 전역(대부면 제외)이 인천으로 편입돼 인천의 면적은 996.96㎢로 크게 늘어났다.

<1996>
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으로 지목됐던 안두희가 버스 운전기사 박모 씨에 의해 피살됐다. 평소 백범을 존경했으며 백범 추모식 직후 살해를 계획했다고 밝힌 박 씨는 이듬해 11월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도중 1998년 3월 특별사면됐다.

<1997>
인천시민들의 염원에 힘입어 인천·경기 서남부를 권역으로 한 인천 최초의 지상파TV 인천방송 iTV가 10월 11일 개국했다. 인천 도심~강화를 한달음에 오갈 수 있는 새 강화대교(길이 780m·폭 19.5m)가 개통돼 강화~김포 간 교통정체를 일부 해소하게 됐다.

<1998>
인천과 수도권을 가시청권으로 하는 인천방송 iTV가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인터내셔널과 메이저리그 중계계약을 맺고 LA 다저스에 소속돼 있던 박찬호의 등판 경기 텔레비전 단독 생중계를 시작했다. 이를 통해 iTV는 인천시민 뿐 아니라 수도권 시청자들에게도 인기를 받는 지역 대표 지상파방송으로서 지위를 굳혀갔다.

<1999>
공사 착공 6년 만에 10월 6일 박촌~동막 20.5㎞ 구간을 남북으로 잇는 인천도시철도1호선이 개통돼 인천도 본격적인 지하철 시대를 열었다. 10월 30일엔 중구 인현동 지상 3층 건물 지하 노래방 수리공사 도중 난 불이 2층 라이브 호프집과 3층 당구장으로 옮겨붙어 10대 청소년 57명이 숨지는 대참사를 빚었다.

<2000>
인천국제공항 개항을 앞두고 11월 20일 인천공항~서울 방화대교 간 40.2㎞의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가 개통됐다.
삼미 슈퍼스타즈(1982년), 청보 핀토스(1985), 태평양 돌핀스(1988), 현대 유니콘스(1996) 등 인천을 거쳐 명멸해 간 팀들에 이어 인천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단 SK 와이번스가 창단됐다.

<2001>
'단군 이래 최대의 국토 개발'이란 꼬리표가 달린 인천국제공항이 3월 29일 역사적인 개항식을 갖고 운영에 들어갔다. 남구 문학동에 국제 규격에 맞춘 문학경기장이 개장했으며 주경기장(지상 5층·지하 1층)은 국내 축구경기장 중 4번째 규모로 5만256명을 수용하도록 지어졌다.

<2002>
인천과 중국은 10차 한중해운협의회를 통해 인천~칭다오. 인천~상하이 간 정기 컨테이너항로 개설에 합의했다. 인천항을 경유하는 컨테이너항로 개설로 전국 물동량 40%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수도권 물류수송업체들에게 비용 절감 효과를 안겨줬다.

<2003>
송도(53.4㎢), 청라(17.8㎢), 영종(138.3㎢) 등 3곳 209.5㎢이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됐다.
송도는 국제 비즈니스 중심도시, 청라는 화훼·위락·국제금융단지, 영종은 인천국제공항과 연계된 항공물류, 관광·레저단지로 육성이 추진되고 있다.

<2004>
안상수 인천시장이 한 건설업체 대표로부터 현금 2억 원이 든 굴비상자를 여동생을 통해 전달받은 뒤 시 클린센터에 신고했지만 뇌물수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1년6개월 간의 공방 끝에 결국 2년 뒤 대법원이 무혐의 판결을 내리면서 안 시장의 손을 들어주며 사건이 일단락됐다.

<2005>
제16회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가 문학경기장에서 8월 31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9월 4일까지 펼쳐졌다. 1975년 서울에서 제2회 대회가 열린데 이어 한국에선 30년 만에 인천에서 두 번째 대회가 열려 시민역량을 한데 모으는 계기가 됐다.

<2006>
5월 31일 치러진 민선 4기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안 시장은 물론 군수·구청장, 시의원 선거를 석권하며 개발 정책에 힘이 실렸다.

<2007>
서울(1986년), 부산(2002년)에 이어 인천이 국내 3번째로 4월 아시아경기대회 유치에 성공,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 앞서 3월 23일엔 인천공항~서울역 구간 중 1단계로 인천공항~김포공항 37.6㎞ 구간을 달리는 인천공항철도가 개통됐다.

<2008>
1920년 문을 연 뒤 88년 동안 인천시민의 애환을 담아냈던 숭의종합운동장이 구도심 재개발에 따라 철거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09>
8월 7일~10월 25일 80일 간 송도국제도시에서 인천세계도시축전 화려하게 펼쳐진다. 오는 10월엔 인천공항~송도국제도시를 교량으로 연결하는 12.3㎞의 인천대교가 개통될 예정이다.

/소유리·장지혜기자 (블로그)rainwo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