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저예산 영화 일취월장 홍상수 '잘 알지도 …' 최고 걸작
상반기 저예산 영화 일취월장 홍상수 '잘 알지도 …' 최고 걸작
  • 승인 200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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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일의 영화이야기
며칠 전 모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용건은 2009년 상반기 한국 영화계 결산이었다. '위기론 속에서도 가능성들이 엿보인 6개월이었다'는 등의 답변을 했다. 무엇보다 몇몇 저예산 (독립) 영화들의 일취월장이 인상적이어서였다. 흥행적으로나 비평·미학적으로나. 아니나 다를까, 5월까지 개봉된 목록을 찾아보니 총 34편 중 과반이 그 범주다. 제목조차 익숙지 않은 영화들도 수두룩하다. 위기의 터널을 거치며, 우리 영화판이 저예산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와중에 기적의 다큐멘터리 '워낭소리'(이충렬 감독)는 300만에 육박하는, 기념비적 박스 오피스를 기록했다.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양익준)도 12만여 명을 동원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작지 않은 비평적 성취까지 곁들여. 흥행 수치로는 보잘 것 없으나 미학적으로 눈길을 끈 예들은 한 둘이 아니다. '낮술'(노영석), '허수아비들의 땅'(노경태), '잘 알지도 못하면서'(홍상수) 등 등.
홍상수의 아홉 번째 장편 나들이는 특히 '2009년의 우리 영화'로서 손색없다.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박쥐'나 봉준호의 '마더' 등에 가려 덜 주목 받긴 했다. 올 칸에서도 그랬다. 공경쟁 부문('박쥐')이나 주목할 만한 시선('마더') 등 공식 섹션 아닌, 병행 섹션인 감독 주간에 초청받은 터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천상 저예산 영화다운 그 속내는 얼마나 소박한가. 하지만 제목에 주제가 축약되어 있는 영화는 홍 감독의 전작(全作) 중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가볍지 않은 문제작이다. 2시간여가 여느 웰-메이드 주류 영화 못잖은, 아니 그 이상의 극적 리듬을 타고 펼쳐진다. 개성 만점의 엉뚱한 유머·페이소스로, 박찬욱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면서.
영화가 홍상수 특유의 동어반복을 탈피한 것은 아니다. 소소하다 못해 하찮기까지 한 일상의 비틀기 등은 여전하다. 그 작가적 반복 속에 그러나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유의미한 변주, 여유, 원숙 등이 감지되는 것이 사실이다. 허구 속 감독 구경남(김태우 분)을 통해 자기 자신을 비판·조롱할 수 있다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면서도 냉소로 빠지지 않는다. 그 조롱과 성찰의 '사이'를 견지하는 줄타기도 삼삼하다.
일찍이 나는 '밤과 낮'이 '홍상수의 중간 결산'이라고 진단한 바 있는바, 이 영화는 '밤과 낮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성공적 이후'.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홍상수 필모그래피 중 가장 풍성한 텍스트로서 평가받을 자격 충분하다. 영화의 전 층위에서. 그의 최고작이었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능가한다. 홍상수 그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걸작을 빚어낸 것이다. 마치 쉬어가듯, 힘을 빼고 빚어낸 저예산 영화를 통해 말이다.
그래서일까. 세계 최대 최고 영화 비평가 조직인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이 '올해의 영화'(The Best Film of the Year) 선정 투표를 진행하면서 샘플로 제시한 60편 가운데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만 포함시켰다.
/영화 평론가·경기대 겸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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