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이야기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박찬욱의 '박쥐' 못잖은 찬반 논란을 겪고 있는 중인가 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보단 주로 네티즌을 중심으로. 그와 연관해 취재 전화를 받기도 했다. 요지는 '살인의 추억'은 말할 것 없고 '괴물'에 비해 평점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혹시 해 기사들을 검색해보니, 한 기사에선 관람 전 9.65점에서 7.69로 하락했단다.
그런 것도 기사가 되나, 싶기도 하나 그러려니 치자. 칸에서 영화를 보며, 그럴 거라 예상한 터라 새삼스러울 바도 없다. 기자도 지적했듯, 흥미로운 것은 일부 관객들이 제기하는 어떤 관점들이다. 가령 영화를 엄마에 대한 아들의 복수극으로 보거나, 말투 등으로 보아 아들 친구와 엄마 간에 육체적 관계가 암시된다는 것 등이다.
그야말로 해석은 하는 이들의 자유니만큼 그럴 수 있을 게다. 그럼에도 거기엔 일정한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고, 의당 그래야 한다. 흔히 말하는 창작자의 의도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텍스트에 포진되어 있는 수많은 약호들(codes) 및 단서들(clues) 때문이다. 관객/독자의 해석을 가능케 하는 요소들로, 그것들이 해석의 한계를 요구한다. 움베르토 에코 등이 지적했듯, 그렇지 않으면 으레 '과잉해석'(overinterpretation)으로 흐르게 되고, 그 해석은 설득력이 상실되거나 약화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무나 할 수 있을 성싶고 해도 무방한 텍스트 독해에 일말의 전문성 및 신중함이 요청되는 까닭은 무엇보다 그래서다.
이런 기준으로 판단할 때, 상기 해석들은 '과잉'이라는 수식어를 떼려야 도저히 뗄 수 없다. '마더'를 복수극으로 간주할 경우, 영화 속 도준(원빈 분)의 캐릭터는 말할 것 없고 그의 모든 행위들이 거짓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스포일러에 대한 염려 탓에 더 이상 영화의 속내를 상술하진 않겠다만, 그것은 영화 자체가 무력화되고, 나아가 와해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건 아니지 않은가. 동의 여부를 떠나, '천재' 운운되기조차 하는 감독에 의해 빚어진 주목할 만한 문제작이거늘.
친구 진태(진구)의 혜자(김혜자)에 대한 언행 역시 그의 캐릭터를 이해하는 장치로 읽혀야 한다. 그 점은 형사 제문(윤제문)의 언행도 마찬가지다. 다소 차이가 나지만, 혜자를 막 대할 때 제문은 진태와 크게 다르지않지 않다.
기대감이 워낙 컸던 탓일까, 대다수 평자들과는 달리 나는 '마더'에 다소 실망한 쪽이다. 원빈이라면 모를까,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연기자의 연기를 전면에 내세운 감독의 선택이 못내 아쉬운 것이다. 김혜자 그녀의 연기가 제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무의미한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글쟁이 이어령 선생의 글을 새삼 거론하며, 그의 글이 죽인다고 감탄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과 같은 이치에서다.
'마더'에 남다른 주목을 하는 이유는 정작 다른 데에 있다. 마치 모성을 찬양하는 듯하지만 영화는 그 모성도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는, 섬뜩한 주장을 펼치는 문제적 텍스트라는 것이다. 영화는 다분히 불균질적인 텍스트를 통해, 세상의 모든 모성이 위대하다는 유의, 진부하기 짝이 없는 맹목적 '모성 신화'에 크고 작은 균열을 내는 것. 내 눈에 혜자는 모성의 한 사례일 따름이지, 결코 어머니의 대표로 비치진 않는다. 이와 같은 내 해석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다른 지면 다른 기회에 상술해야겠다. /영화 평론가·경기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