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심사위원 대상 '올드보이' 이어 수상여부 관심
제 62회 칸 국제영화제가 13일 성대한 축제의 막을 올렸다. 프랑스 남동부 칸에서 24일까지 펼쳐지는 이번 영화제는 이날 오후 7시(한국시간 14일 오전 3시) 뤼미에르 극장에서 개막식과 함께 12일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비롯해 역대 최다인 10편이 초청, 어느해보다 국내 영화계 관심이 뜨겁다. 인천일보에 영화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전찬일 영화평론가가 칸으로 날아갔다. 이에 현지에서의 생생한 표정을 현장 중계한다.


'제62회 칸영화제' 12일간 대장정 … 국내 10편 초청

'경쟁작 20편 중 亞 영화비중 '쑥'·남미 '0' 특이점



13일 저녁(현지 시각),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개막작으로 선정된, 할리우드 픽사 스튜디오의 3D 애니메이션 '업'(피드 닥터 감독)이 월드 프리미어 되면서 제 62회 칸국제영화제가 12일 간의 대장정을 내딛었다.

'특별 상영'에 초청된 한불 합작 영화 '여행자'(위니 르콩트)-1994년의 신상옥 감독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경쟁 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이창동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했다-까지 감안하면 한국 영화 역사상 최다 편수인 10편의 장, 단편이 선보이는 터라, 올 칸영화제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그 어느 해보다 더 크고 뜨거운 게 사실이다.

최대 관심사는 물론 박찬욱 감독의 '박쥐'(사진)가, 2004년 심사위원 대상을 거머쥔 '올드 보이'에 이어 또 다시 수상의 영예를 차지할 것인가 여부다.

워낙 빵빵한 상대들이 많은 터라 큰 기대를 품긴 힘드나, 그 가능성이 마냥 낮지만은 않다. '뱀파이어 치정 멜로'라는 장르 요인 외에도, 인상적 인물 해석과 연기, 정치한 플롯, 유려한 카메라 워킹 등 빼어난 영화적 세공력이 9인 심사위원단을 제법 매혹시키리라 판단되기에 하는 말이다.

어느덧 열두 번째 찾는 2009 칸이 그 어느 해보다 더 흥미롭게 다가서는 까닭은 단지 한국 영화 때문만은 아니다. 주목할 만한 시선까지 포함하는 공식 섹션에 해당되는 바겠지만, 으레 크고 작은 구설수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칸의 선택'에서 어떤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와 연관해 영화제 조직위원장 질 자콥이 밝힌 선정의 변이 퍽 눈길을 끈다.

한가지만은 확실한데, 영화의 중심이 계속 변하고 있다는 것. 영화의 새 물결(New Wave)을 일별하려면 루마니아의 수도 부큐레슈티로 … 시적 감성과 리얼리즘, 재기발랄함으로 거듭난 스릴러를 보려면 홍콩(두기봉의 '복수')이나 서울('박쥐')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거두 로베르트 로셀리니의 영혼과 조우하려면 베이징(로우 예의 '스프링 피버')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신 없는 인류의 낭만주의나 심리주의, 포스트-베리만적인 불행 따위는 유럽의 낡은 세계에 맡기고 말이다.

그것은 곧 세계 영화의 지형도 역시 변하고 있으며, 그 도도한 변화의 물길을 칸이 새삼 확인·환기시키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일까, 20편의 경쟁작 중 순수 미국산 영화가 불과 2편(쿠엔틴 타란티노의 '인글로리어스 바스터즈'와, 이안의 '테이킹 우드스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대만(차이밍량의 '얼굴')까지 포함하면 중국어권 영화가 무려 3편이나 된다는 사실, 박찬욱 외에도 필리핀의 영화악동 브릴란데 멘도자가 지난해 '세르비스'에 이어 '키나타이'로 2년 연속 칸 경쟁작 대열에 합류하면서 '칸의 총아'로 급부상했다는 사실, 그리고 올해 아시아 영화의 비중이 부쩍 커졌다는 사실 등이 무척이나 유의미한 조짐으로 읽힌다.

최근 몇 년 간, 으레 한, 두 편쯤은 있기 마련이었던 동유럽 영화가 부재하나 주목할 만한 섹션에 루마니아 영화만 2편이니 그러려니 치자. 그러고 보니 2000년대 들어 약진 일로에 있던 남미 영화가 경쟁 섹션에 전무하다는 것도 올 칸의 특이점이다.

물론 주목할 만한 시선에 2편(브라질 헤이코 달리아 감독의 '어드립트'와, 콜롬비아 치로 게라의 '바람의 여행')이 있긴 하나, 그간 칸 선정위 쪽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남미 영화의 비상을 유난히 강조해왔던 터라 더 그렇다.

실례 2008년에는 브라질 월터 살레스 & 다니엘라 토마스의 '리냐 드 파세' 등 3편이 경쟁작이었다.
 
물론 이런 변화들이 일시적인 것일 수 있다. 프랑스나 미국 등 특정 나라를 제외하면 칸의 선택엔 다분히 자의적인 변동 내지 변덕이 늘상 존재해왔다. 그렇기에 내년엔, 또 그 이후엔 어떤 상황, 어떤 변화가 펼쳐질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올 칸의 변화가 심상치 않은 함의를 띠고 다가서는 것만은 분명하다. 적어도 내 눈엔. 그 변화들을 주의 깊게 관찰·기록할 참이다. 눈과 귀만이 아니라 마음과 머리, 온몸을 활짝 열어 놓고.

/칸에서 보내는 전찬일의 영화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