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박찬욱 감독의 '박쥐' 이야기를 한 번 더 해야겠다. 그간 그가 연출해온 영화들은 으레 크고 작은 논란을 야기 시켜왔으나, '박쥐'를 둘러싼 찬-반 싸움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열띠기 때문이다. 일반 관객들보다는 영화 식자들 간에 특히나 더.
나만 해도 그렇다. 아주 간만에 모 영화 전문 주간지에 '찬' 쪽, 즉 지지의 글을 써 보냈다. '박쥐'가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나 음악효과, 내러티브 구성 등 요모조모 치밀히 따져 봐도 '좋은 영화'라 칭할 만"한데다, "기대 이상의 지적인 자극과 정서적 울림, 그리고 감각적 재미를 동시에 안겨준다"고 진단해서였다. 반대 쪽 평자는 나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평가를 내렸음은 물론이다.
비록 나와는 입장이 상반될지언정, 상기 비판의 글을 퍽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그 글이 영화 보기의 개성·주관성을 새삼 절감시켜주어서이기도 했다. 똑같은 플롯을 두고서 한쪽은 정치할 뿐 아니라 그만한 예를 쉽게 찾을 수 없다고 하고, 또 다른 한쪽은 느슨한 내러티브에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다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이쯤에서 강조하고픈 요점은 위 두 평자 중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거나, 상대적으로 영화를 더 잘 읽었다고 주장할 순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그런 사례들이 왕왕 벌어지곤 하더라도. 무엇보다 해석의 열려있음 때문이다. 해석이 열려있다면, 아무렇게나 해석해도 된다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세상의 모든 텍스트에는 자의적 과잉해석을 제어하는 숱한 단서들이 엄연히 존재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이런 의문을 떨칠 수가 없다. 일반 관객이라면 모를까, 명색이 영화 전문가라는 이들이 어떤 텍스트가 당혹스럽거나 불편하다고 그 텍스트를 나쁘다고 단죄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 헌데 어떤 평자들은 다름 아닌 그런 근거들을 들어 '박쥐'를 비판·비난하고 있다. 박찬욱이 A급 영화를 B급 감성으로 비트는 '문제적 감독'이라는 것을, (흥행 여부에 상관없이) 친-대중적 감독이 아니라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을 테면서 말이다.
모 인터넷 사이트의 '박쥐' 관객 평점을 보니 10점 만점에 5점대에 지나지 않았다. 그 평점이면 범작에 그치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재앙에 가까운 혹평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박찬욱이 국내외 영화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나 그 영화적 실력·명성을 감안하면 감독이나 그를 성원하는 이들에겐 치욕인 감마저 없지 않다. 그렇다고 관객들을 탓할 순 없다.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관객들이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영화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요 선택인 탓이다.
소위 전문가들이 그런 관점을 유지한다면 그러나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흥행 스코어만이 어떤 영화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유일무이한 기준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분야건 베스트셀러만이 최상의 텍스트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박쥐'의 불편함·당혹스러움은 따라서 박찬욱 영화의 정체성·개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으로 이해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