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이야기
지난 금요일 낮 매체 시사회와 저녁 프리미엄 시사회를 통해 두 차례 영화를 보고 난 이후 며칠 째, '박쥐'와 더불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월요일엔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조우해 완전히 매료당했지만, 아무래도 목하 우리 영화계 최대 관심사는 그 '박찬욱 표 뱀파이어 치정 멜로'와 연관된 것인 탓이다. 그래 줄곧 영화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수업 등 가는 데마다 영화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이 칼럼 직전까지 두 건의 프리뷰를 쓰기도 했다.
때마침 '박쥐'가 2009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되었다는 낭보까지 날아들어 화제는 한층 더 증폭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신부였다 뱀파이어로 거듭나는 주인공 상현 역 송강호가, 치명적 불륜 빠져드는, 태주 역 김옥빈과 질펀한 정사를 수차례 나누는 등 생애 첫 성애 연기에 도전했다. 그에 그치지 않고 예상치 못한 헤어누드까지 감행했다. 그러니 폭발적 관심이 일지 않으면 외려 이상한 상황이다.
그 관심은 예매 사이트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개봉을 하루 앞둔 29일 오전 10시 기준으로, 맥스무비 28.54%에서 티켓링크 45.29%에 이르기까지 예매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영화사의 주장처럼 압도적은 아닐지언정 상당히 주목할 만한 수치임은 분명하다.
김옥빈의 '발군의 연기'를 '박쥐'의 최대 수확으로 진단하고 있는 나는, 이 지면에서 또 다시 영화에 대한 리뷰를 할 마음은 없다. '박쥐'의 칸 진출 의미나, 상현/송강호의 헤어누드의 영화사적 의의 등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지만 참으련다. 다만 영화에 보다 더 잘 근접하기 위한 일종의 주요 가이드를 두개 제시하는 걸로 대신하련다.
첫째, '박쥐'는 박찬욱 영화 세계의 중간 결산적 성격을 띠는, 터닝포인트적 텍스트라는 것이다. 그의 전작들의 흔적이 씨줄과 날줄로 포진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의 그 어떤 그의 영화 텍스트보다도 더 꼼꼼히 상호텍스트적(intertextual) 독해가 요청된다. 아주 섬세한 영화 보기와 듣기, 느끼기, 읽기를 하지 않으면 영화를 충분히 감상·음미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상현과 태주가 본격적으로 나누는 첫 번째 정사를 지켜보면서는 '올드 보이'의 그 유명한 롱 테이크 액션 시퀀스와 연결시키지 않을 도리가 없다. 혹자는 유하 감독의 '쌍화점' 등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치정 멜로'라는 장르적 속성이나 송강호와 조인송 두 스타배우의 열연 등에서 둘은 영락없는 닮은꼴이기에 하는 말이다.
두 번째 안내는, 싫건 좋건 박찬욱 특유의 'B급 감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 역설하고 있듯, 박찬욱은 A급 영화를 B급 감성으로 비틀고 그 비틀음으로 적잖은 일반 관객들에게 크고 작은 당혹·불편을 안겨주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때론 생뚱맞기도 한 '박쥐'의 튀는 유머는 그런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이러한 이해 없이 박찬욱과, '박쥐'를 포함한 그의 영화들에 에 접근하는 것은 연목구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기덕에 다가서기 위해서 감독이 시도 때도 없이 역설하는 '반(半) 추상'을 최대한 고려해야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