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감 연기·섬세한 묘사 130분 긴시간 물흐르듯
굳이 걸작(****), 수작(***), 범작(**), 태작(*), 졸작-별점을 줄 수 없어, 흔히 '폭탄'(bomb)이라고 부른다- 등의 상투적 방식으로 분류하고 싶진 않다. 가끔씩 놓치고 지나가면 평생 후회할 법한 영화들과 조우할 때가 있다. 아주 운 좋게. 영화 평론은 물론 영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가 극히 행복한, 흔치 않은 경우다.

2000년 대 이후의 외국 영화로 한정하면, <와호장룡>에서 <브로크백 마운틴>과 <색, 계>에 이르는, 이안 감독의 '사랑 삼부작'을 비롯해 노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그랜 토리노>,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친애하는 당신>, 크리스티안 문쥬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 등이 당장 떠오르는 몇몇 예들이다. 그 목록에 며칠 전, 뒤 늦게 본 2009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 부문 수상작 <굿' 바이: Good&Bye>(おくりびと, 타키타 요지로 감독)를 포함시키련다. 설문 조사를 토대로 도서출판 작가가 선정한 '2009 오늘의 영화'에서 270여 편의 후보작 가운데 8편의 외국 영화 안에 당당히 진입한 화제의 문제작!

영화는, '치명적'이라고 할 순 없을지언정 무척이나 인상적이며 매혹적이었다. 그 동안 호의적인 평가를 숱하게 들어왔지만, 내겐 그 이상이었다. 첼리스트에서 납관사로 변신하는 주인공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 분)를 위시해, 다이고의 처 미카(히로스에 료코), 직장 상사 이쿠에이(야마자키 츠토무), 동료 유리코(요 키미코) 등에 이르는 인물 구도 및 성격화는 말할 것 없고, 배우들의 실감 연기 역시 흠잡을 데 없이 만족스럽다. 특히 섬세하기 짝이 없는 세부 묘사가 발군이다.

극적 호흡, 즉 플롯은 어떤가. 별 다른 자극적 설정도 묘사도 부재-'12세 등급'이 가리키듯, 다이고 내외는 부부이건만 그 흔한 정사 한번 질퍽하게 벌이지 않는다, 그럴 법도 하건만-한데도 130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 마치 물 흐르듯, 수려하게 흐른다. 이른바 '웰메이드 영화'의 전형을 증거라도 하듯, 전적인 몰입으로 인도하는 것 아닌가. 그 느낌이 마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을 맛 볼 때와 거의 흡사하다.

상기 덕목들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영화 속 인물과 사건을,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과, 결코 호들갑스럽지 않으면서도 강렬한 여운을 선사하는 주제의식이다. 영화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우면서도 유의미한 가를 차분한 설득력으로 보여주고 들려준다. 그 과정을 통해 영화는 인물들에게 내포되어 있는 이러저런 사연·상처들을 묵묵히 인정하거나, 치유해준다. 그 인정, 그 치유의 과정을 지켜보는 맛이 여간 짠한 게 아니다. 영화는 소위 '걸작'이라 칭하기 주저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엔 부분적으로 지나치게 감상적이며 상투적인 감이 없지 않다. 걸작이라면 지녀야 할 비판적 거리감이 다소 결여되어 있는 것. 하지만 영화가 그 감상성, 그 상투성마저도 싫어할 수 없게끔 만드는 마력을 발휘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놀랍지 않은가. 일본 영화의 어떤 저력을 새삼 환기시킨 영화의 감흥을 한 동안 떨쳐내기 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