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 이야기
<400번의 구타> <쥴 앤 짐>등으로 유명한, '씨네필의 영원한 초상'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은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다름 아닌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영화평을 쓰는 것이고, 결국 세 번째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면서.

사실 그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무리다. 두, 셋째 영화사랑은 말할 것 없고, '보통 관객'으로서 같은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은 탓이다. 결국 그의 말대로라면 영화를 사랑하는 것 자체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셈이다. 따라서 전제가 따른다. 두 번 이상 볼만한 영화들이 그 대상이라는 것이다.

요 며칠 새, 같은 영화 두 번 보기(Double Viewing)의 묘미를 절감하고 또 절감하고 있다. 2009 아카데미 8관왕에 빛나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3관왕에 오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을 통해서다. 물론 둘 다 그럴만한 영화들이다.

'대니 보일의 포스트-트레인스포팅'이라 할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인도 뭄바이(봄베이) 등을 무대로 펼쳐지는, 더 이상 극적일 수 없을 정도로 극적인 휴먼 드라마이자 가슴 시릴 대로 시린 감동의 러브 스토리다. 그 속내로만 치면 영화는 상투적이다 못해 진부하다. 그 비극적 전개로 인해 게다가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처음 볼 때만 해도 내러티브와 연관된 단서들을 숱하게 놓치고 넘어갔다. 그때만 해도 잘 몰랐는데, 두 번째 보면서 그것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그 까닭은 우선, 자막을 읽기 급급해서였을 게다. 속도감 넘치는 플롯도 그 '놓침'을 거든다. 뿐만 아니다.
감독 특유의 감각적 표현 스타일도 그렇거니와, 한 시도 귀를 뗄 수가 없는 사운드 연출 등 숱한 보고 들을 거리로 인해 그저 이야기 층위에만 머물 수도 없다. 처절한 내용과 화려한 외양 간의 그 모순적 어긋남이 기대 이상의 감흥을 전한다. 그러니 영화를 다시 보면서 그 감흥이 배가되었으리라는 것은 굳이 강변할 필요 없을 터.

<벤자민 버튼…>은 두 번 보기의 맛이 더욱 짙다. 그것은 여로 모로 관조·음미의 영화이어서다. 2시간 40분여의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유려한 내러티브 호흡에 압도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단연 발군이다. 데이비드 핀처의 최상급 연출력로 연출력이거니와, 다분히 단조로운 감마저 없지 않은 피츠제럴드의 단편을 이렇게 유려한 리듬의 대하드라마로 탈바꿈시킨 각색자(들)의 솜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올 아카데미는 각색상 또한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안겨주긴 했지만 말이다.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등 배우들의 명연에 시선을 주면, 영화가 배우의 예술이란 뻔한 사실이 새삼 상기된다. 연기의 재탄생·재발견이란 클리셰를 동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분장은 또 어떤가. 이래저래 예술적 경지라 할 만하다. 이런 경지들을 과연, 그저 한번만 보고 만끽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