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황규광 동양탄소고문  
2006년 8월 12일 (화, 제17일) <2의 1>

오늘은 이번여행의 제17일째이다. 앞으로 4일만 지나면 이번 여행도 끝난다. 이곳은 적도아래이나 아침기온은 18℃로 덥지 않다. 오늘과 내일은 또라자의 란떼빠오 주위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또라자의 독특한 문화와 풍습을 보려고 한다. 란떼빠오는 '따나 또라자'의 중심도시이며 연간강우량이 서울의 3배인 4000mm나 내린다. '따나'는 땅, '또라자'는 또라자 사람이라는 뜻이므로 '따나 또라자'는 「또라자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이다. 특히 이곳만의 장례식, 암굴 묘, 선형가옥 등은 모두 죽은 자와 관계되는 것이다. 현지가이드가 오늘 어디에서 장례식이 있는지 알아보니 호텔에서 1시간 30분 거리의 마을에서 군인의 장례식이 있다는 정보를 얻어 그리로 가기로 했다.

먼저 소시장과 돼지시장으로 갔다. 장례식에 부의금으로 가져갈 돼지를 큰놈으로 한 마리 골랐다. 돼지를 장례식장으로 가져가기 위해 발과 몸을 묶는데 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대나무 껍질로 묶는다. 대나무를 어떻게 처리하였는지 아주 쉽게 묶었다. 장례식 마을로 들어가는 큰 길에서 버스를 내려 산길을 약30분 걸어 올라갔다. 큰 물통에 든 토속주와 돼지를 메고 장례식집 근처에 가니 마이크소리가 요란하다. 장례식은 고인의 집에서 하고 있는데 문상객으로 붐비고 있으며 고인이 군인이었기에 군에서 의장대가 와있다. 젖은 진흙마당에는 대나무로 꽁꽁 묶인 돼지가 여러 마리 놓여있다. 이 집은 부잣집이 아니어서 그런지 물소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들은 지정된 곳에 안내되고 차 대접을 받았다. 조금 후 상주일행이 인사하러 왔다. 장례식은 군대식으로 거행되고 있었으며 끝날 무렵에 뒷마당에 가보니 돼지를 통째로 불에 그슬려 털을 태우고 있다. 잡은 돼지는 요리하는 것이 아니고 잘라서 생고기로 문상객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음식대접은 하지 않는다. 문상객이 부의금으로 가지고 온 것은 크게는 돼지 한 마리 작게는 담배, 땅콩, 초콜릿도 있다. 우리들은 장례식 도중에 그 집을 떠났다.
 
 
'또라자' 주민들 화려한 장례식… 막대한 돈 투입
 
귀족 죽으면 몇개월씩 치러… 돼지 수백마리 대접


죽음 자체는 슬픈 일이지만 또라자 사람들에게 장례식은 슬픈 일이라기보다는 축제에 가깝다. 죽은 사람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행복을 기원하는 의례이기 때문이다. 또라자 사람들에게 장례식은 생애 중 가장 중요한 의식이며 모든 친지들이 한데모여 축복하고 기원하는 행사이다.

또라자에서 장례식은 인생최대의 이벤트이며『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돈이 더 든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례비용에 막대한 돈을 들인다. 장례식의 여러 단계에서 그 때마다 물소와 돼지를 잡아 문상객과 마을사람들에게 대접한다. 귀족의 장례식은 몇 개월씩 계속되며 한 번의 장례식에 물소 '150 마리', 돼지 '1000 마리'를 잡은 기록도 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의 장례식은 아주 간단하게 치러진다. 물소는 농경용이 아닌 장례식의 제물로만 사육되고 있으며, 장례식은 추수가 끝난 8월~9월에 많이 거행된다.

또라자 사람들의 약85%는 기독교를 믿고, 그 외는 이슬람교와 '알룩 또 돌로'(Aluk To Dolo)라는 정령신앙(精靈信仰)을 믿고 있으나 장례식만은 종파와 관계없이 옛날부터 내려오는 풍습을 지키고 있다. 장례식비용이 마련될 때까지 유체는 '미라'로 몇 년이고 집안에 모셔둔다고 한다.

새로 똥고난을 신축하고 오늘 집들이하는 집이 있다고 하여 가보기로 했다. 대나무가 우거진 경사진 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는데 피가 흐르는 물소고기나 돼지고기를 그냥 들고 내려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굵은 대나무에 1/4마리 정도의 토막 난 시뻘건 물소고기를 메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다. 신축 똥고난의 집들이집의 마당에 들어서자 우리들은 깜짝 놀랐다. 마당은 토막 난 물소와 돼지로 생지옥 같은 아수라장이다. 마치 지옥에 들어선 느낌이다. 이곳이 새로 지은 집의 '집들이 축제장'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마당은 포장되지도 않았으며 진흙바닥에 나무 잎을 깔고, 그 위에서 칼과 도끼로 물소를 찍어 자르고 있다. 우리들은 놀라 얼른 그곳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