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 이야기
지난 주에 이어 이번에도 영화에서의 등급 문제를 짚어보련다. 최근 일고 있는 등급 분류 시비가 아니라, 등급과 영화 텍스트의 내적 완성도 간의 상호연관성이나, 등급으로 인해 관객이 갖게 마련인 어떤 기대ㆍ예상 등에 관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새삼 이러저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15세 등급'으로 어제(목) 선보인 윤종석 감독의 <마린보이>다.

우선, 질문부터 던져보자. 유하 감독의 <쌍화점>이 만약 15세 등급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면 지금과 같은 영화적 수준을 구현할 수 있었을까. 또 400만에 근접하는 관객들이 영화를 찾았을까. 당연히 아닐 터. 제재 및 내러티브 층위에서만이 아니라 시ㆍ청각 층위에서도 영화는 성인 관객을 주된 소구층으로 삼고 기획ㆍ제작되었을 터기에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마린 보이>는 어떨까.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영화는 예의 '바다의 왕자'나 박태환 같은 건강한 '물개 청년' 스토리가 아니다. 몸속에 마약을 넣고 바다를 헤엄쳐 운반하는 범죄자 이야기다. 거기에 치정의 드라마가 서브플롯으로 깔리고, 범죄물답게 제법 강한 강도의 폭력도 동원ㆍ표현된다. 성 및 폭력 묘사에서, 18세 등급의 <작전>(이호재 감독)보다도 한층 더 센 세기로.

<마린 보이>는 따라서 성인물적인 어떤 기대감을 품게 한다. 박시연의 노출이나, 그녀와 김강우의 베드 신 등을 강조한 마케팅 전략ㆍ전술도 그랬다. 헌데 영화는 결국 15세 등급을 받았다. 주제나 소재 면에선 18세용이나, 15세에 걸 맞는 표현 수위에 그쳤기 때문이었을 듯. 제법 볼만한 풍광 묘사 등 덕분이기도 했을 테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그 등급은 <마린 보이>에 약일까, 독일까. 물론 둘 다 가능하다. 약이려면 하지만 전제가 따른다. 적어도 성ㆍ폭력 묘사에선 볼거리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의미일 터이니, 드라마가 그만큼 탄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관객의 기대치를 배반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결과는 어떤가?

이색적 제재를 끌고 나가기엔 감독의 역량이 부족했던 걸까, 영화는 '용두사미' 격으로 귀결되고 만다.

심각하기 짝이 없는 범죄 드라마로 시작하거늘, 그 심각성이 못내 부담스러웠는지, 중반 이후 어정쩡한 멜로드라마와 코미디로 방향을 선회한다. 별다른 재미도 안겨주지 못하면서. 그 선회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차라리 범죄 드라마로 계속 달렸더라면, 싶을 정도다.

김강우의 어설픈 연기도 영화 보기 맛을 반감시킨다. 그 탓에 조재현이나 이원종, 오광록 등의 노련한 연기 등마저 빛이 바랜다. 마케팅이 그토록 내세운 박시연의 육감적 몸매는 꽤 볼만은 하지만, 극적으로 따로 논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더욱이 그 캐릭터를 가리켜 '팜므 파탈'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다. 결코 '치명적'이 아니니까. 18세와 15세 경계에 위치했다고 판단되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건 박시연/유리가 부르는 노래 'No more lonely nights' 장면이다.

그것만으로는 그러나 관객들을 강력하게 흡인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닐까. 영화가 철저하게 18세용으로 만들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내게서 떠나질 않고 있다. 그처럼 혹할 만한, 이색 소재로 그만한 결과밖에 빚어내지 못한 영화가 못내 안타까워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