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 이야기
흔히 실존철학의 효시로 평가되는 키에르케고르의 입을 빌지 않더라도,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다. 달리 말해 아무리 힘들더라도 절망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네 인간은 죽음에 다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 영화계 판도를 지켜보며 부쩍 많이 하고 있는 생각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주지하다시피 지난 2년 여 간 한국 영화를 두텁게 에워 싸왔던 주된 분위기는 그 놈의 '위기'였다. 짜증스러울 정도로, 위기론이 범람했다. 특히 현장 영화인들의 체감 위기감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당장이라도 다들 죽을 것처럼 말들을 해댔다. 때문에 나처럼 "위기=기회"라는 신념을 품고 그런 주장을 펼치는 이들은, 현실을 모르는 어리숙한 낙관론자로 치부되기 십상이었다.

위기의 회오리 와중에서도 하지만 나 같은 긍정론자들이 없지 않았다. 위기는 기회라고 여기는 그들 중 더러는 여로 모로 모험적이라고 비칠 수 있을 제재를 그럴 듯하게 극화해 승부수를 던졌다. 그리고는 기대 이상의 큰 성공을 일궈냈다. 이미 짐작하겠지만 <추격자>(나홍진 감독), <영화는 영화다>(장훈), <과속 스캔들>(강형철), <쌍화점>(유하) 등 최근 1년 여 간 유의미한 성취를 일궈낸 일련의 영화들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예상치 못한 '괴력'을 발산해온 <과속 스캔들>이 마침내 600만 선을 돌파했단다. <쌍화점>은 300만 선을 향해 질주 중이란다. 이 땅의 숱한 위기론자들을 무색하게 하면서. 아니나 다를까, 매체에서도 예의 위기론을 잠시 접어 두고 이 두 영화의 흥행 요인들을 짚느라 여념이 없다. 사실 이 원고를 쓰는 중에도 그런 취지의 질문을 모 방송국 작가로부터 받았다.

이 자리에서 그 요인들을 짚을 마음은 없다. 그저 '이야기의 힘' 만을 들면서 그 성공을 설명하려는 단순논리적 접근만은 하지 말자고 말하련다. 그 힘을 포함해 보다 다양한 요인들이 상호작용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으리라는 건 상식일 터이기 때문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했던가, 위 두 영화의 성공과 관련해 강조하고픈 요점은 모험 없이는 결코 큰 결실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당장 <제니와 주노>(2005)를 떠올려 보라. 15세 동갑내기 십대가 임신을 했다는 설정만으로도 영화는 얼마나 심하게 두들겨 맞아야 했으며, 얼마나 처절한 흥행 참패를 맛봐야 했던가. 결코 엉망으로 만든 저질 영화도 아니었거늘.

그로부터 불과 3년여의 세월이 흘렀을 따름이다. 헌데 그보다 훨씬 더 발칙한, '과속 3대 이야기'가 600만 선마저 넘었단다. 놀랍지 않은가. 그 사이 이 사회가 그만큼 더 관용적이 된 걸까?

그러고 보니 <괴물>에서 <왕의 남자>에 이르는, 마의 1000만 고지를 넘은 네 편의 영화들 뿐 아니라 500만 고지를 넘은 대개의 영화들도 그랬다. 강도 차는 있으나 꽤 모험적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영화에 절실히 요청되는 건 안이한 기획이 아니라 일생일대의 모험 아닐까. <과속 스캔들>과 <쌍화점>의 선전이 더욱 소중히 다가서는 것은 그래서다. 그 모험들이 퍽 인상적인 것이다. 내 영화적 취향ㆍ지향에 전적으로 부합되어서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