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 글·사진= 황규광 동양탄소고문
2008년 8월 07일(목, 제12일)

이번 여행도 오늘이 12일째이니 절반은 넘어섰다. 늘 그렇지만 여행의 처음에는 날짜가 느리게 지나가는 것 같다가 일정이 절반이 넘어서면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오늘도 조금 늦게 9시 지나 호텔을 떠나 근처에 있는 '뿌리 루끼산' 미술관으로 갔다. 이 미술관은 발리 예술가들의 작품을 연대순으로 전시하고 있어 발리회화의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름다운 다랑논이 보이는 경사진 길을 지나 발리 힌두교 성역의 하나인 '구능 까위' 신전으로 갔다. 유적입구에서 반바지를 입은 사람은 주황색 보자기로 다리가 보이지 않게 가리고, 바지를 입은 사람은 주황색 끈을 허리에 매고 들어갔다. 이것은 이 신전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다. 이곳에는 한 개의 바위를 깎아서 만든 묘비가 늘어서 있다. 이 유적은 11세기경 끌을 사용해서 만들어졌으며 우다야나 왕과 그 가족을 위한 묘비라고 전해지고 있다. 높이 7m나 되는 거대한 신전은 잘 보존되고 있었으며 묘비는 모두 10기(基)가 있다.

'고아 가자' 사원으로 갔다. 11세기경의 뻬젠 왕국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 석굴사원이다. '고아 가자'란 코끼리 동굴이라는 뜻이며 14세기에 네덜란드인이 발견했다. 컴컴한 동굴 속에는 시바, 비쉬누, 브라마 신을 나타내는 링가(남근)와 코끼리 머리를 한 가네샤의 상이 모셔져 있다.

'띠르따 엠뿔' 사원에 갔다. 이곳에서는 노란 보자기와 띠를 허리에 매고 들어갔다. 이 사원은 성스러운 물이 솟아나오는 사원으로 발리 힌두교를 믿는 발리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장소이다. 10세기~14세기에 번영하다가 1343년에 멸망한 와르마디와 왕국의 유적이 있는 곳으로 이곳에는 성스러운 물이 샘에서 모래와 작은 자갈을 밀어 올리면서 솟아오르고 있다. 물 밑에는 초록색 수초가 투명한 성수에 에메랄드 색으로 비추고, 또한 밖에서는 야자나무의 푸른 잎이 물에 비쳐 신비적인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 사원은 물을 지배하는 비쉬누 신을 모시고 있다. 하얀 옷차림의 현지인 한 가족이 제단을 향해 열심히 절을 하고 있다. 발리 사람들은 이 샘을 성수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몸을 정결하기 위해 찾아오고, 또 성수를 가져가기도 한다. 사원의 한쪽에 수욕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어 현지인들이 옷을 입은 채 물에 들어가 있다. 이 사원의 왼쪽언덕에 스카르노 대통령이 세운 별궁이 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올라 조금 춥다고 느낄 때 갑자기 시계가 확 트이고 바뚜르 호수가 내려다보인다. 해발1350m의 낀따마니(Kintamani) 고원에 올라왔다. 이곳이 적도 아래인가 의심할 정도로 서늘하다. 바뚜르 호수 너머 바뚜르 산(Batur, 해발1717m)의 검은 용암이 흐른 것이 호수까지 이어져 보인다. 바뚜르 산은 활화산이며 1917년과 1926에 분화하였다. 호수의 오른쪽 멀리 하얀 연기를 뿜고 있는 것은 아방 산(Abang, 해발2153m)이다. 바뚜르 호수는 발리 중부의 농지에 물을 공급하는 중요한 호수 이다.

부사끼 사원에 갔다. 아궁 산(Agung, 3142m)은 발리 북부에 있는 활화산이며, 이 섬에서는 제일 높은 산이다. 발리 사람들은 아궁 산을 '신'들이 머물고 있는「성스러운 산」이라고 부르며 오랫동안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여왔다. 발리 힌두교의 총본산인 부사끼 사원은 그 「성스러운 산」의 기슭(해발900m)에 있는「어머니와 같은 사원」이다. 이곳은 크고 작은 30개의 사원이 모여 있는 복합사원이다. 발리 사람들은 각자의 카스트에 따라 참배하는 사원도 다르다고 한다.

저녁식사를 할 만한 곳을 찾아 여러 곳을 헤매다가 KOKI라는 상호가 붙은 한국식당에 가서 12일 만에 처음 한국음식을 맛보았다. 우리 일행은 해외여행 때 한국식당에는 잘 가지 않는다.

늦은 저녁식사를 끝내고 서둘러 덴파사르 공항으로 갔다. 오전 1시30분에 떠나는 비행기를 타고 멀리 떨어져 있는 뉴기니 섬으로 가기 위해서다. 탑승수속을 마치니 오후 11시가 되었다.

그런데 비행기 출발시간이 1시간 늦어진다고 하여 공항의 긴 의자에 드러누워 한잠 자기로 했다. 피곤했던지 의자에 누워서 2시간 반이나 잤다. 우리 비행기가 이륙한 것은 다음날 8월 08일 오전 2시 40분이다. 이륙 후 나는 곧 꿈나라로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