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이야기
한국 영화계가 간만의 낭보와 더불어 새해를 맞이했다. 신예 강형철 감독의 <과속 스캔들>이 곧 500만 고지를 넘을 거라는 소식과, 중견 유하 감독의 <쌍화점>이 '18금 영화' 사상 최고 기록-배급사 집계에 의하면 주말 누적 수치가 무려 155만이었단다-으로 흥행 열기를 내뿜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화제작들의 흥행 선전이 우리 영화계를 두텁게 에워싸고 있는 예의 위기를 말끔히 가시게 할 리는 없다. 위기 요인들이 워낙 산적해 있는 데다 구조적 해결책은 난망인 탓이다. 그럼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해온, 현실적 위기보다 더 위험한 심리적 위기감을 일정 정도 약화시킬 것만은 분명하다. 아울러 우리 영화의 가능성ㆍ잠재력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웅변했으리라.

위 두 영화는 한국 영화 관객들의 어떤 성향을 다시금 확인시켜줬다. 즉 흥행에서 차지하는 이야기 요인의 중요성과, 입소문의 위력을 새삼 입증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땅의 투자사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캐스팅 요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을 뜻한다.

당장 <과속 스캔들>을 보라. 차태현을 비롯해 박보영 황석현, '과속 3대' 출연진을 접하면서 각별한 기대를 품었던 이들은 아마 거의 없었으리라. 차태현의 경우, 출세작 <엽기적인 그녀>(2001) 이후 줄곧 그다지 인상적인 행보를 걷지 못했다. 다소의 결례를 무릎 쓰고 말하면, 그는 거의 잊혀져가던 중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쌍화점>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혹할 만은 했지만 조인성-주진모-송지효에 이르는 진용을 흥행 카드라고 여겼던 이들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스크린 신예인 송지효에 대해선 아무 말 말자. <미녀는 괴로워>의 히어로였음에도 영화의 대 성공에 주진모가 한 기여도를 내세우기란 여의치 않은 게 현실이다. 그 공은 절대적으로 김아중 몫이었으며, 그럴 만했다. <비열한 거리>로 진정한 영화배우로 거듭난 조인성마저도, 흥행과는 객관적으로 거리가 멀었다.

이쯤에서 감독의 연출력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강변하련다. 강형철, 유하 두 감독이 아닌 다른 감독의 손에 의해 빚어졌다면 지금과 같은 두 영화의 성공은 아마 불가능했을 터이기에 하는 말이다. 그들은 기대 이상의 극적 호흡 및 연기 앙상블 등을 빚어내는데 성공함으로써, 기대 이상의 대중적 호응을 끌어내는데도 성공한 것이다. 그렇다고 잘 만든 영화는 으레 관객이 알아본다, 라고 주장하고픈 마음은 없다. 감탄할 정도로 잘 만들어졌건만 관객을 매혹시키지 못해 실패하는 예들이 세상에는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내 요지는 적잖은 이들이 시나리오만이 관건인 것처럼 강변하곤 하나, 제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라 할지라도 실제로 어떤 연출과 조우하느냐가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찬욱 아닌 <올드 보이>를, 봉준호 아닌 <살인의 추억>을 상상할 수 있는가. 내 요지는 영화는 비즈니스이지만 동시에 창작 행위라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다. 이 평범한 '팩트'를 우리 영화계는 너무 자주 간과ㆍ망각해왔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