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이야기
16일 화요일 저녁 특별 시사에서, 그 동안 학수고대하던 <쌍화점>을 만났다. 일찌감치 노출 마케팅으로 유명해진, 유하 감독, 조인성 주진모 송지효 주연의 화제작.

애탄 기다림의 으뜸 이유는, 2006 한국 영화 베스트 1으로 꼽은 바 있는 <비열한 거리>의 두 주역, 유하 감독과 조인성이 또 다시 의기투합해 빚어내는 신작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원의 극심한 간섭을 받던 고려 말기, 왕(주진모 분)과 왕후(송지효), 그 두 사람의 남자인 홍림(조인성)을 축으로 펼쳐지는 남녀상열지사를 극화한 시대극이다. 시대극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도회적 감수성의 두 남자가 난생 처음으로 수백 년 전의 치정극에 도전했다. 그러니 어찌 남다른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 감독 유하의 연출력과 꽃미남 스타 조인성의 연기력을 하루라도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 <색, 계>가 <왕의 남자>와 조우한 (듯한) 영화는 어느 모로는 기대 이상이고, 어느 모로는 기대에 다소 못 미친다.

보는 이들의 영화적 취향·지향 등에 따라,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극렬히 갈릴 게 뻔하다. 내러티브적 층위로나 시각적 층위에서나 시쳇말로 워낙 '센' 영화인 탓이다. 동성애 묘사에서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왕후와 홍림 간의 이성애 묘사에서도 <미인도>를 능가한다. <쌍화점> 역시 헤어 누드가 감행되지 않기에, 그 한계는 명백하지만 말이다. 외연적으로 한정하면, 영화가 감독이 의식했다는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에서>나 이안의 <색, 계>의 충격에 미치지 못하는 건 무엇보다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에서는 유하나 조인성이 아니라면 구현 불가능했을 어떤 계기·순간들로 빛난다. 순제작비 76억 원을 들여 빚어냈다니 감독이 세심한 공을 들인 공간연출(미장센)이나 장엄·격식과 농탕·파격 사이를 심심치 않게 오가는 정치한 플롯에 대해선 상술하진 않으련다. 시인 출신의 감독은 몸의 안무에서 이 땅의 그 어느 감독들도 흉내 내기 쉽지 않은 차원을 선보인다. 이명세 감독의 <형사>에 버금가는 어떤 경지를.

조인성과 송지효는 다름 아닌 배우의 육체가 미장센이요 스크린이란 사실을 새삼 환기시킨다. 바야흐로 인기 정상의 스타덤을 달리고 있는 조인성은 특히, <비열한 거리>와는 또 다른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며 연기자로서 한층 더 높이 비상한다. 이 땅의 그 어떤 남자 스타들도 좀처럼 감행하지 못했던 모험적이면서 기념비적 몸의 연기로써. 남자인 내 눈에도 그가 아름답게 비친 건 그래서였다.

관심을 온통 노출 및 정사 장면에만 집중하는 것은 그러나 영화를 오해·오독하는 것일 수 있다. 때론 정사라는 내포를 띠기도 하지만, 액션 연출에서도 감독은 흔히 체험하기 힘든 압도적 집중력·파워로 묘한 감흥을 선사한다. 표정 연출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인성의 스타 이미지를 해체시키고 싶지 않아서일까, 꽃미남 이미지로 일관하는, 그로 인해 감독 특유의 섬세함이 빛을 바라는 감독의 선택이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지만 세 주연의 표정들의 대비·배합은 클로즈업의 묘미를 만끽시킨다.

관객들이 영화에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장담할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문제적 대중 영화 한 편이 늘어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