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이야기
이번 주 화요일, 집에서 구독하는 모 일간지에 눈길을 확 잡아끄는 기사가 한 건 실려 있었다. "국내 영화 평단의 간판 평론가인 정성일(49)씨가 감독으로 데뷔했다"는 기사였다.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지라 새삼스러울 바 없는 내용이었다. 몇 개월 전 영화진흥위원회 예술 영화 심사에 참여하기도 했거니와, 감독을 향한 정씨의 열정·욕망은 적어도 십 수 년의 짧지 않은 세월을 내포하고 있어서였다. 그가 일찍이 이황림 감독, 김구미자 임성민 박영규 주연의 <애란>(1989)의 각본가로서 영화 창작 작업에 투신했었다는 것은 어지간한 영화 팬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새삼 큰 눈길이 쏠린 까닭은, 영화 평론가의 신상과 관련된 기사가 영화 전문지 아닌 종합 일간지에 사진까지 곁들여 그렇게 큰 지면을 할애 받아 실린 예를 본 적이 없어서였다. 위기를 넘어 영화 비평의 죽음이 심심치 않게 회자되고 있는 상황인 터라, 더욱 더 그랬다. 다소의 과장을 허락한다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섰다. 그 상투구에 내포된 최선의 의미에서.

내친 김에 국내 유명 포털 사이트 뉴스 란을 검색해보았다. 더러는 신하균을 필두로 문정희, 정유미, 김혜나 등 전문 연기자들과 '홍대 앞 요정'이라는 인디 뮤지션 요조의 출연에 초점을 맞춘 것도 있었으나, 관련 기사가 20여 건에 달했다.

그 중에는 "…제작 준비 단계부터 한국영화계는 물론 전 세계 영화관계자들에게 초미의 관심을 끈 작품"으로 "정성일 감독의 영화제작 소식을 접한 해외 영화관계자들이 적극 지원하고 싶다며 러브콜을 보냈을 정도"라는 기사도 있었다.

가히 "평단의 거물"에 걸 맞는 관심이었다. 비록 가까운 거리는 아닐지언정 이십 수년을 알고 지내온 선후배 사이로서, 그 관심들이 자못 반가웠다.

기사들은 으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가제)>을 통한 정씨의 이번 도전이 유명 평론가에서 프랑스 '누벨 바그' 기수로 변신,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그것에 비견된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씨는 트뤼포처럼, "영화를 보는 첫 번째 방법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며, 두 번째 방법은 영화평을 쓰는 것이고, 결국 세 번째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는 테제를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하고, "그 말을 실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두 시네필의 결정적 차이는 트뤼포의 장편 데뷔가 20대 후반에 이뤄진 반면, 정씨는 그보다 무려 이십 수년이나 늦은, 50을 바라보는 지천명의 나이에 이뤄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정씨의 데뷔는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에 따른 리스크가 수반되지 않을 수도 없다. 그 책임은 상당 정도 천박하기 짝이 없는 이 땅의 영화 풍토에 돌려야겠지만 말이다.

문득 감독으로서 정씨가 외면할 수 없을, 아니 대결해 반드시 이겨내야만 하는 으뜸 적은 세간의 크고 작은 기대가 아닐까, 싶다. 스타 평론가로서 그의 명성으로 인한 기대감이 워낙 클 터이기 때문이다. 정씨의 평소 캐릭터는 말할 것 없고 심사 때 읽은 시나리오로 판단컨대, 영화는 지독히 '정성일다울' 게 뻔하다. 그 개성이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 지 진정 궁금하다. 영화가 세상 빛을 보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여전히 그 앞에 도사리고 있을 테지만, 눈을 부라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