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이야기
장률. 40대 후반의 재중동포 감독이다. 소설가이자 중문학 교수 등의 이력을 가진 그가 영화계에 전격 투신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엉뚱하다 못해 어느 모로는 황당하기까지 하다. 영화감독인 한 친구와의 논쟁 끝에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였다는 것이다. 설마, 라고? 사실이다. 사연-감독에게 직접 들은 바에 따른 것이다-인즉 이렇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그는 상기 친구의 부탁을 받고는 작심하고 시나리오를 써 넘겼단다. 곧 영화화되리라 기대했지만 하 세월이었다. 어느 날 친구를 만나 따졌단다. 어떻게 된 거냐고? 친구 왈, 영화 작업이란 게 워낙 어렵기 때문에 으레 그러기 마련이라며 허풍을 떨더란다.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으면서. 그 모양이 하도 눈꼴 사나와 대뜸 그랬단다. 그렇다면 영화 문외한인 자기가 손수 연출해, 영화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그는 약속을 지켰다. 그 결과로 탄생한 작품이 다름 아닌 데뷔작 <11세>다.

40줄에 접어들며 얼떨결에 만든 영화는 2001 베니스국제영화제 단편 경쟁부분에 입성하는 쾌거를 올렸다. 결국 소기의 목적은 이룬 셈이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내친 김에 장편 영화에 뛰어 들었다. 영화의 세계에 더욱 깊숙이 들어가 전업감독이 된 것이다.

대다수 비전문 연기자를 기용해 극저예산으로 빚어낸 <당시>(2004)가 늦깎이 신예의 첫 장편이다. 벤쿠버영화제 비경쟁 부문을 비롯해 로카르노, 전주영화제 등에 초청·상영되었다. 다음 해엔 그를 세계적으로 '발견'케 하는 문제적 걸작 <망종>을 선보인다. 2005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에서 첫선을 보인 영화는 프랑스독립영화배급협회(ACD) 상과 페사로영화제 대상, 부산영화제 뉴 커런츠 상 등을 수상한다. 그로써 장률이라는 이름 및 존재감을 선명히 각인시킨다. 주로 (극)소수 열혈 팬들과 영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긴 하나.

난 지금도 칸에서 <망종>을 처음 보며 맛보았던 감흥을 잊지 않고 있다. 어느 덧 감독의 트레이드마크적 스타일이 된, 지독히도 느린 호흡의 극사실주의적 미니멀리즘은 새삼스러울 바가 없었지만, 그만의 진심·진정성에서 기인하는 깊고도 큰 울림을 전했다. 그 얼얼한 울림은 머리를 자극했고 가슴을 후벼 팠으며 감각을 때렸다. 단언컨대 흔치 않은 영화체험이었다. 지난 10 여 년간 조우한 숱한 한국 영화들 중 별 다른 주저 없이 <망종>을 으뜸으로 꼽는 건 무엇보다 그 울림 때문이다.

'망종 이후' 그는 몽고를 무대로 <경계>를 빚어 2007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고, 그 여세를 몰아 2008년 올해는 두 편의 연작을 빚어냈다. 인구 3천만의,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경에서 펼쳐지는 가슴 아린 휴먼 드라마 <중경>과, 윤진서 엄태웅의 출연으로 화제가 된, 1977년 이리폭발사건 30년 후 이야기 <이리>다.
<중경>과 <이리>는 장률이 바라보는 현대(인)에 관한 장화상이다. 결코 보기 만만치 않은 쓸쓸한 자화상. 그 자화상이 영화공간 주안에서 오는 12월 선보일 예정이란다. 그 속을 들여다보길 권한다면 평론가 특유의 과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