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이야기
오늘 선보이는 <미인도>(전윤수 감독)는 <아내가 결혼했다>(정윤수)와 마찬가지로, 여배우의 어떤 힘을 증거·과시하는 작품이다. 여배우 혼자 책임져야 하는 원톱 영화가 아니건만 말이다. <아내…>에서 손예진이 그 풍부한 표정 연기로 그랬던 것처럼, 김민선은 기념비적 몸의 연기로 기대 이상의 감흥을 안겨준다. 한국 여배우사에 길이 남을, 치명적 매혹을 맘껏 발산하면서.

사실 <미인도>는 소재부터가 혹할 만했다. TV 드라마 <바람의 화원> 탓에 그 신선함이 다소 빛 바래긴 했으나, 김홍도와 더불어 조선 최고의 화가였던 신윤복이 여장남자였다는 가상의 설정이나, 사제지간인 홍도와 윤복 간에 펼쳐친다는 러브 스토리 등이 크고 작은 호기심을 자아내기 모자람 없었다. 그런 마당에 "센세이션 조선 멜로"답게, 윤복 역의 김민선이 <색, 계>(이안)의 탕웨이에 버금가는, 과감한 노출 연기를 감행했다 하니 화제가 증폭되는 것은 당연했다. 영화 마케팅 및 보도가 김민선의 노출 강도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영화의 노출엔 별 다른 기대를 하진 않았다. 그 동안 하도 속아 왔던 터라, 으레 '뻥'이려니 싶었던 것. 당장 <아내…>의 손예진을 떠올려 보라. 인상적 호연을 펼쳤을지언정, 고작 가슴 라인과 등짝 정도 보여주고는 "노출 운운"하며 호들갑떨지 않았던가. 더욱이 <베사메무쵸>(2001)부터 <파랑주의보>(05), <식객>(07)에 이르는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더라도 남다른 기대를 걸긴 주저됐다. 때문에 "두려워말자, 다 보여주자"라는 제목의, 모 영화 주간지에서의 김민선 인터뷰를 우연히 접했을 때도, 허풍이려니 치부했다.

막상 시사회에서 확인해보니 그러나, 상기 인터뷰나 광고 문구는 과장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영화적 관습 및 심의 관행 등을 감안하면, "…다 보여주자"는 김민선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색, 계>처럼 헤어누드까지 나아가진 않았지만, 그야말로 헌신적 연기로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래, 아름다웠다. 특히 내러티브 전개 상 전환점을 이루는, 윤복과 강무(김남길 분) 사이에 10분 가까이 벌어지는 정사 시퀀스는 숨이 가쁠 정도로 자극적이고 당당했으며 감동적이었다. 자못 반갑기도 했다. 우리영화에도 <색, 계> 못잖은, 멋진 러브신이 탄생되는 듯해….

어느 덧 서른에 접어든 김민선. <여고괴담 2>(1999)로 스크린 데뷔전을 치른 지 10년의 세월을 맞이하는 그는 마침내 생애의 배역, 생애의 열연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여자배우로 우뚝 자리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제 <해피 엔드>(정지우, 1999)의 전도연, <바람난 가족>(임상수, 2003)의 문소리, <얼굴 없는 미녀>(김인식, 2004)의 김혜수 등에 뒤이어 또 한명의 용기 있는 여배우를 갖게 되었다. 그 알량한 CF성 스타 이미지에 종속·구속되지 않고 캐릭터·역(할)에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던질 줄 아는 진짜 배우를. 그러니 어찌 반갑지 않고,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