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에서
"뇌물을 써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기꺼이 뇌물을 쓸 것이다." "나를 더 잘 살게 해 줄 수 있다면 지도자들이 불법 행위를 하더라도 괜찮다."

여느 후진국 국민들의 말이 아니다. 필자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어린 자식들이 갖고 있는 의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답변이다. 지난주 발표된 한국투명성기구의 청소년 부패 인식 정도 조사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렇지만 시각을 돌려 보면 이는 결코 놀랄 일도 아니다. 최근 이봉화 보건복지부 차관이 사퇴했다. 이로써 현 정부 들어서만 '땅을 사랑하다' 퇴진한 장·차관급이 5명으로 늘어났다. 쌀 소득 직불금 파동 여파로 앞으로 옷을 벗게 될 고위 공직자가 또 얼마나 더 될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부패상은 고위직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지역사회에까지 빠른 속도로 전이되고 있다. 경기도 공무원 청렴도는 전국 16개 광역 단체 중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고, 인천시도 2006년 8위에서 작년 14위로 떨어졌다.

더 심각한 것은 교육 공무원의 비리다. 국가청렴위원회의 청렴도 조사 결과, 16개 시·도 교육청 중 서울이 16위, 인천 15위, 부산 14위로 나타났다. 국내 1, 2, 3위 도시의 교육 공무원 청렴 상태가 최하위라는 것은 이들 도시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예사롭게 넘길 수 없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당사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건 변명뿐이다. 누구 하나잘못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뒤늦게 내놓는 대안도 생색내기 일색이다. 국회는 직불금 사태와 관련, 국정 조사에 나섰다. 국세청도 부당 수령자가 양도세를 감면용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없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인천시교육청은 '인천광역시 교육청 공익신고 보상금 지급 조례'를 입법 예고했다. 인천시도 조만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감사기관을 설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이런 조치가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사건이 터지면 정치인과 공직사회가 비리 척결을 외쳐대지만 부패 사슬이 더 견고해지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러니 우리 어린 자식들의 머리 속에 그 같은 그릇된 의식이 자연스레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신(無信)이면 불립(不立)이라 했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국가가 결코 흥하지도 발달하지도 못한다는 말이다. 미래의 동량들이 일그러져 가고 있는 사회가 선진국으로 성장한 예도 없다. 이래도 남 탓만 하고 있을 것인지 모두 자문해 봐야 할 때다.

/김홍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