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이야기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인 지난 주 중, 한국 영화 두 편을 봤다. 전도연 하정우 주연,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와 조승우 신민아 차승우 주연, 최호 감독의 <고고70>이었다. 다소 뒤늦게나마 <멋진 하루>를 본 까닭은 무엇보다 '전'-'하'의 연기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뿐이 아니다. 인물들의 성격화(characterization)를 비롯해 주제의식, 플롯 등에서 예상치 못한 멋진 감흥을 선사한다.

1년 전 빌려준 350만원을 받기 위해 헤어진 옛 '남친'을 찾아 나선 희수(전도연)나, 그 빚을 갚기 위해 옛 '여친'과 함께 하루 동안 이 여자 저 여자들을 찾아다니며 손을 벌려 끝내 거의 다 변제하는 병운(하정우), 두 주인공 캐릭터들이 단연 눈길을 끈다. 특히 병운 캐릭터에 집중하면 영화는 한층 더 빚을 발한다. 도입부에선 언뜻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전형적 '나쁜 남자'로 비치지만 실상은 정 반대인 것.

서서히 드러나는 병운의 정체는 그야말로 반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영화에 언제 이런 캐릭터가 있었던가.

모 매체가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를 가리켜 "전대미문의 캐릭터 영화가 떴다!"고 했지만 병운이야 말로 그런 캐릭터로서 손색없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병운 캐릭터 아니었을까, 싶다.

감독은 'My dear friend'-영화의 영어 제목이다-를 통해 끝내 선명히 드러나지 않는 '여자 희수'의 상처를 서서히 보듬으며, 치유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장편 데뷔작 <여자 정혜>(2005)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로 모로 홍상수 영화와 비교될 법하지만, '홍'의 영화들엔 부재하는 희망의 기운이 감지되어 정서적으로 조금은 더 끌리는 매혹의 영화다. 흥미롭지 않은가.

한편 <고고70>은 최호 감독(<바이 준> <후 아 유> <사생결단>)이 자기보다 10여년 이상 선배들인, 국내 록 음악 1세대에게 바치는 일종의 오마주성 찬가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상대적으로 덜 평가 받은 '데블스'가 그 세대의 대표격으로 선택되었다. 영화는 지독히도 폭력적이기 짝이 없었던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번 신나게 놀아보자고 외친다. 제목이 말해주듯.

<멋진 하루>와는 다른 측면에서지만, <고고70> 역시 기대 이상의 재미를 안겨준다. 주, 조연급들의 실감 연기가 단연 돋보이는 영화를 통해 시대의 폭력성을 되돌아보는 맛이 여간 삼삼하질 않다.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 못잖다. 열 대까지 동원해 찍었다는, 말미 공연 시퀀스의 리듬감은 가히 장관이다. 호흡 면에서 그 동안 선보였던 그 어떤 국산 음악 영화들을 압도한다. 기대치 않았기에, 더욱 귀하게 다가서는 성취다.

헌데 이렇게 괜찮은 영화들이 흥행에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거나, 못했다. <고고70>은 개봉 2주차에도 50만 선도 넘질 못했다. <멋진 하루>는 30만 대에 머물며 3주차엔 박스 오피스 10위 밖으로 밀려났다. 그 탓을 그러나 영화에로만 돌리고 싶진 않다. 10대 후반과 20대의 주 고객 층을 매혹시키기엔 그들이 너무 고리타분한 걸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이 땅에선 결국 화끈한 액션물이나 저급한 왁자지껄 코미디, 최루성 멜로드라마가 아니면 안 되는 걸까. 알다가도 모를 대중 관객의 취향이여! 당혹스럽다, 적잖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