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진리는 항상 힘의 중심에 서있다
태양빛에 붉게 타오르고 있는 화염산의 모습.
화염산(火焰山, 훠엔산)은 투루판의 북쪽에 있는데, 동서 98㎞에 걸쳐 길게 뻗은 산이다. 높이는 약 500미터 정도로 그다지 높지 않다. 화염산은 대부분 붉은 사암으로 되어 있는데 풍화와 침식작용으로 인해 세로로 길게 패여 있다. 이는 마치 산 전체가 태양열을 받아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화염산이라 불렀다. 약 40년 전에는 이곳의 최고온도가 48.5도에 달해 중국에서 가장 높은 기온으로 기록되기도 했는데, 지면의 온도는 82.3도였다. 화염산의 온도가 높은 것은 그 모양이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아 마치 태양열을 모으는 전지판처럼 태양을 향해 기울어 있기 때문이다.

위구르인은 이 산을 '구즈고다로(Kuzgodaro)', 즉 붉은 산이라고 부른다. 화염산은 서유기에서 삼장법사 일행이 불길 때문에 고초를 겪는 사건의 무대로 등장하기도 한다.

서유기에서 손오공과 삼장법사, 저팔계, 사오정이
화염산의 열기를 헤치고 나아가는 장면을 동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베제클릭 천불동은 화염산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무르툭강의 절벽에 위치한 베제클릭 천불동은 중국의 남북조 시대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였으며, 석굴군(群)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를 보여주는 위구르 문화 예술 연구의 보고이다. 위그루어로 '아름답게 장식한 집'이라는 뜻의 이 천불동은 화염산과 같은 붉은 사암에 조성된 82개의 석굴사원인데, 현재는 42개가 남아 있다. 1898년 러시아의 클레멘츠의 도굴작업을 통해 학계에 알려졌다. 이후 서구 제국의 약탈 속에 세계 도처로 흩어졌다. 14세기에는 이슬람교도의 침입으로 많은 부분이 소실되고, 남은 유물은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에 의해 파괴되어 지금은 겉모습만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일제시대 일본의 승려인 오타니가 수집한 것의 일부가 남아있다. 오타니는 1902년부터 1914년까지 3차례에 걸쳐 실크로드를 탐사하며 유물을 수집했는데, 이때 베제클릭 천불동의 유물도 함께 수집했다. 그리고 후에 조선총독부에 기증하였는데 해방 후 가져가지 못하고 한국에 남게 되었다.

 
투르판시 화염산에 인근에 위치한 천불동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