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명마는 공주보다 귀하다.
국운을 걸고 구한 신무기 천마(天馬). 그리하여 슬피 우는 공주를 천 필의 신무기와 바꾸기 위해 가차 없이 초원의 거센 바람 속으로 몰아넣은 부정(父情). 가정을 근간으로 한 유교적 도덕주의는 '권력'에 이르면 잔인해진다. 필요할 때 앞세우고 목적을 달성한 후면 처단하는 것, 정치라 부르는 권력이다. 권력은 욕심을 동반한다. 누구의 욕심인가. 권력을 장악한 자의 욕심이다. 그러나 욕심을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하는가. 그대들의 풍요롭고 평안한 생활과 보다 강건하고 위대한 국가를 위하여. 우리를 괴롭히는 적들을 섬멸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진짜 욕심은 무엇인가. 해 뜨는 곳에서 해지는 곳까지 호령 한마디에 무릎 꿇고 숨죽이는 천하를 얻는 것, 그것이 권력의 진짜 속내다.
그런 권력을 위해 공들인 천마는 어디에 있는가. 취재단은 중국 3대 명마의 산지인 빠리쿤 초원으로 향한다. 빠리쿤 초원은 신강의 남쪽 대문인 하미에서 북쪽으로 150㎞ 떨어져 있다. 선택할 길은 없다. 오직 고비사막을 가로지르는 한줄기 도로가 있을 뿐이다. 직선도로는 몽롱하다. 강렬한 햇살. 멈춰선 듯한 풍경. 변함없는 지평선이 마치 그림 속을 지나는 듯하다. 아니 우리의 움직임마저도 빨아들인다. 신기루와 모래바람으로 손짓하는 사막, 그것은 곧 블랙홀과도 같다.
황무지 도로 양쪽으로 갓 심은 나무들이 도열하듯 섰다. 나무 사이로는 물을 나르는 호스가 즐비하다. 몇 년 전만해도 황무지였던 곳이 지금은 나무로 덮이고 있다. 다시 십 년 후면 어떻게 될까. 사전임해(沙田林海). 사막에 초원이 들어서리라. 차안에서도 갈증을 느낀다. 얼마 남지 않은 고마운 생수를 한 모금 마신다. 창밖으론 저 멀리 황무지에 우뚝 솟은 탑이 보인다. 소남호불탑(小南湖佛塔)이다. 인도를 가기 위해 장안을 나선 현장법사는 이곳을 지났다. 그는 하미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인적은 물론 하늘을 나는 날짐승도 없다. 오직 망망한 천지가 있을 뿐이다. 밤에는 도깨비불이 별처럼 휘황하고 낮에는 모래바람이 모래를 휘몰아 와 소나기처럼 퍼부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 두려운 줄 몰랐다. 다만 물이 없어 심한 갈증 때문에 걸을 수조차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5일 동안 물 한 방울 먹지 못하여 입과 배가 말라붙고 당장 숨이 끊어질 것 같아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었다.'
현장은 모래 위에 엎드려 수없이 관세음보살을 외었다. 그래도 물은 없었다. 늙은 말을 한 마리 잡았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리고 간을 꺼내 먹었다. 그가 먹은 것은 고기가 아니었다. 생명수였다. 현장이 5일간 걸어간 길을 우리는 가볍게 하루에 왕복한다. 과학의 시대 자동차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래바람이 솟구쳐 하늘을 가리는 자연은 그때와 변함이 없다.
유목민족인 하사커족이다. 이동식 가옥인 장펑 너머로 그들의 말과 양떼가 평화롭게 풀을 뜯는다. 과연 저기에 천마가 있는가.
그러나 아쉽게도 천마는 없다. 초원을 일주하는 관광마들이다. 천마가 더 이상 신무기가 될 수 없기에 사라진 것이다. 더구나 오랜 세월 조랑말과의 교배로 순종이 남았을 리 만무하다.
안서도호의 푸른 천마
타클라마칸을 나는 듯 왔네
전장에서 당할 자 없었고
주인과 한 마음으로 큰 공을 세웠네
오색 꽃무늬 온 몸을 감도니
만리라 한혈마를 이제 보았네
번개보다 더 빠른 것 세상이 다 아는데
언제 서역 길을 다시 달릴까
하지만 소중함이 더 그리운 까닭은 무엇인가. 이 시대 결코 잃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들이 지금도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변화무쌍하고 숨 가쁜 시간 속에 정신없는 오늘, 우리는 또 어떤 소중함을 잃고 있는가. 아니 그 또한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인천일보 실크로드 특별취재팀>
중국인 누구나가 알고 있는 하미과(哈密瓜)는 신강성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과일이다. 수박, 참외, 멜론을 섞은 맛으로 아삭아삭하며 육즙이 꿀맛이다. 하미과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겼을까. 청나라 건륭제때 속국인 하미왕국의 왕이 황실로 보내는 공물에 하미과를 보냈다. 처음 본 과일을 먹은 건륭제가 너무 맛이 있어서 과일이름을 물었다. 신하도 처음 본 과일이었다. 그는 하미에서 온 것에 착안하여 '하미과'라 했다. 그러나 이 과일은 하미 서쪽의 싼싼현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러므로 '싼싼과'라 해야 맞다. 하지만 모두가 하미과로 알고 있고 그렇게 부르니 하미가 원산지가 되었다. 지금도 원조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된다. 열이 많이 발생하여 입안과 목안이 터지기도 하고 심할 경우에는 코피가 나기도 한다. 아무리 맛있는 것도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하미과는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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