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
인천녹색연합, 민속식물연구소 등 외래귀화식물조사단이 지난 18일 계양산을 찾았다.

조사결과, 계양산의 외래식물은 70여 종류가 분포하고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번 조사를 담당하는 송홍선 소장이 2004년 조사 때의 56 종류보다 14여 종류가 늘어난 것이다.

계양산에 외래귀화식물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계양산의 여기저기 뻗어있는 등산로와 등산객들로 인해 계양산에 외래귀화식물 침입이 지속되고 있다는 게 민속식물연구소의 설명이다.

계양산의 귀화식물은 대체로 낮은 지역에 집중돼 있으나 군부대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족제비쑥이 빈터나 밭에 비교적 넓게 분포하고, 서쪽으로는 털여뀌가 축축한 땅에 자란다.

산중턱의 등산로 주변에는 미국개기장을 비롯해 절개지 복구용으로 오리새, 큰김의털, 왕포아풀 등을 심은 것이 저절로 퍼지고 있다.

특히 목상동의 계양산 초입에는 위해식물인 단풍돼지풀, 돼지풀, 미국자리공 등이 넓게 퍼지고 있다. 토종식물서식처를 외래귀화식물이 차지하는 현상에는 관할 행정 기관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관리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지난 2006년 계양산 자락 5만평이 크게 훼손되는 일이 발생했다.

구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소유주와 관리인이 나무를 모두 뽑아 버리고 이 곳에 잔디를 심은 것이다.

이 당시 인천지역 시민 사회 단체는 대기업이 골프장 건설을 염두에 두고 고의로 산림을 훼손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같은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계양구는 토지소유주인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과 토지임대인에게 원상회복명령을 내리고, 이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원상복구명령을 받은 토지임대인은 나무를 심으면서 풀씨들을 뿌렸다. 하지만 2년이 지난 현재 이 곳은 다시 심은 나무는 죽고 외래귀화식물인 큰금계국과 개망초가 훼손부지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에 계양구는 복원 지시만 내렸을 뿐, 제대로 복원됐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노형래기자 (블로그)trueye·사진제공=인천녹색연합


1.족제비쑥 [국화과]
한해살이풀이다. 높이는 12~30cm이다. 줄기는 갈라진다. 잎은 줄꼴이고 자잘하다. 꽃은 5~8월에 머리모양으로 달린다. 열매는 길둥근꼴이며 모서리가 있다. 동아시아 원산이며, 한반도에는 1945년 광복 이후에 들어왔다.

2.가는털비름 [비름과]
한해살이풀이다. 높이는 60~200cm이다. 줄기는 털이 있다. 잎은 어긋나기한다. 꽃은 7~10월에 녹색으로 핀다. 열매는 가로로 잘라진다. 씨는 지름 1mm로서 검은빛이고 광택이 있다. 남미 원산이며, 한반도에는 1980년대 초반에 들어왔다.

3.큰땅빈대 [대극과]
한해살이풀이다. 높이는 20~60cm이다. 줄기는 가지를 친다. 잎은 마주나기하며, 잎몸 가장자리는 톱니가 있다.
꽃은 6~9월에 피며 가지 끝에 성기게 달린다. 열매는 달걀꼴이며 밋밋하다. 북미 원산이며, 한반도에는 1930년대 말에 들어왔다.

4. 망초 [국화과]
두해살이풀이다. 높이는 80~180cm이다. 전체에 털이 있다. 잎은 어긋나기하며, 잎몸 가장자리에 털이 있다. 꽃은 7~9월에 흰빛으로 피지만 작다. 열매는 9월에 익는다. 북미 원산이며, 한반도에는 1900년 전후에 들어왔다.


 
송홍선 박사의 외래 귀화식물 이야기

 
외래식물은 역사이전에도 들어왔다.

인간은 농경 이전에도 식물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수렵과 채집을 하는 민족이 유용한 식물을 의도적으로 보호하던 예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민족은 방랑과 함께 유용한 식물을 들고 다녔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식물은 얼마간 이동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인간이 농경을 시작함으로써 나무숲이었던 자연지역이 경지로 바뀌게 됐다. 자연식생의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때문에 양지(陽地)와 초원의 환경을 생육장소로 하는 식물의 분포지역은 급속도로 확대됐다.

재배식물에 수반한 잡초는 재배식물의 이동에 따라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역사이전에는 방랑지역 이외의 태평양과 대서양을 넘나드는 등 서로 다른 대륙과 대륙 사이의 식물이동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식물은 16세기 무렵 유럽으로부터 대양을 넘어가는 항해가 널리 행해지면서 대륙간 이동이 많아졌다. 이동하는 식물의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19세기가 되자 산업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의 식민지 분할이 급속히 진행되고 증기선이나 철도가 세계의 교통체계를 일신해 그때까지 떨어져 있던 호주대륙과 태평양의 여러 섬으로 식물이 건너가 정착하게 됐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때는 세계적으로 대규모의 군대나 화물의 이동이 많아서 이에 따라 이동한 식물도 많다.

이 같은 식물의 이동은 한반도라고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아지풀, 쑥, 닭의장풀, 돌피 등의 논밭 잡초는 대부분 아주 오래 전에 침입한 외래식물이다. 이러한 잡초는 외국에서 들어 왔지만 그 시기를 기록으로 찾아볼 수 없다. 기록이 없던 역사이전에 농작물의 도입과 함께 들어온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그래서 이런 외래식물은 사전귀화식물(史前歸化植物)이라 부른다.

그리고 한반도는 1876년 개항(開港) 이후 외국과 교역이 활발해졌다.

산업이 발전했다. 선박의 출입이 많아졌고 외국인의 왕래가 잦아졌다. 이는 외래식물이 많이 들어오게 된 하나의 수단이 됐다.

외래의 귀화식물은 이 개항시기를 기준으로 다시 구분하고 있다. 개항 이전의 기록이 불충분할 때에 들어온 식물은 구귀화식물(舊歸化植物)이라 하고, 개항 이후에 들어온 식물은 신귀화식물(新歸化植物)이라 하는 것이다.

현재 한반도의 외래 귀화식물은 신귀화식물의 전체와 구귀화식물의 일부를 귀화식물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사전귀화식물은 귀화식물에 포함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침입 시기가 모호한 것이 있어 이의 일부를 또한 포함시키기도 한다.

이는 전문가에 따라 한반도 외래 귀화식물의 수가 다를 수 있음을 말함이다.

인천은 사전귀화식물도 많고, 구귀화식물도 많다. 더욱이 개항 이후에 들어온 신귀화식물도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편이다.

신귀화식물 침입통로의 역할을 했던 주요 지역 중의 하나였던 셈이다.


 
예들은 왜 여기 살고 있을까? - 노현기 계양산 지킴이 사무처장
 
사실 척박한 땅에 개망초나 민들레가 피어있는 것을 보면 무척이나 반갑다. 얘들은 때로 콘크리트 벽이나 아스팔트의 작은 균열을 뚫고 용케도 꽃을 피우기도 한다. 귀화식물이지만 이 친구들의 왕성한 번식력, 강인한 생명력 덕에 훼손된 땅도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들은 힘없는 민초들의 다른 이름일지 모르겠다.

계양산 연무정에서 팔각정에 이르는 주 능선길은 환경부에서 위해식물로 지정한 돼지풀을 비롯해 귀화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갈 곳없는 시민들이 워낙 많이 이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인천 도심권의 가장 큰 자연녹지인 계양산에는 설명을 듣지 않고서는 '얘들이 왜 여기 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식물들이 있다.

우선은 계양산 곳곳에 자라고 있는 계수나무일 것이다.

달콤한 솜사탕 냄새를 풍기는 하트모양의 이파리, 연두빛에 자주색 얼굴의 단풍이 아름다운 계수나무는 계양산 곳곳에 심어져 있다.

계양산의 '계'가 계수나무를 뜻한다고 해석한 일부 역사학자들의 해석에 계양구청이 주요 능선을 비롯해 곳곳에 계수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계양산 자락 5만평 정도의 산림이 크게 훼손된 이후, 현재 상처를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산행을 왔던 시민들은 노란색, 혹은 흰색 풀꽃이 벌판을 이룬 곳에 와 상당한 호사를 누렸다. 어디 사람들뿐이랴. 멧밭쥐, 멧토끼, 고라니 등도 맛난 풀을 즐겼던 것에 틀림없다. 겨울에 이 초지 안에는 똥과 발자국과 집 등 각종 초식동물들의 흔적이 곳곳에 널려 있다.

그 안에 있는 10여개 물 웅덩이는 산개구리와 맹꽁이와 도롱뇽들이 점령했다.

소쩍새와 말똥가리는 제 철이 되면 정기 순찰을 한다. "여긴 내 구역이야." 과도한 간섭만 없으면 자연은 그렇게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그들만의 질서를 회복한다. 또 그들의 '법질서'에는 누군가 홀로 과도한 면적의 땅을 점령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