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3일 환율이 한 때 1,160원 선에 육박하자 구두 개입에 이어 20억 달러에 달하는 '실탄'을 풀어 폭등세에 맞섰다.

   또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 이른바 '9월 위기설'에 대한 적극 진화에 나서는가 하면 금융감독당국은 증권시장에 도는 악성루머 일제 단속에 들어갔다.

◇ 외환당국 보란듯 거액 실탄 방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이날 오전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140원을 넘어선 데 이어 1,150원 선도 돌파하자 잇따라 긴급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정부는 더 이상 시장 흐름에 맡긴 채 방치해서는 공황 상태를 진정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한동안 자제했던 거액의 실탄 방어를 결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지난 1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필요할 경우 개입을 확실히 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2일 김동수 1차관도 "정부는 심리적 쏠림 현상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할 것이며 정부의 대응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말라"고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등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9월 들어 급등하고 있는 환율이 이른바 '9월 위기설'과 맞물리면서 패닉으로 흐르고 있다는 우려가 당국으로 하여금 '종이호랑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시장에 각인시킬 필요가 있어 강력한 '행동'으로 나섰다는 관측이다.

   당국의 개입은 오전과 오후에 걸쳐 이뤄졌으며 개입 규모는 20억 달러를 넘은 것으로 추정됐다. 이를 통해 오전에 1,160원대 진입을 시도하던 환율의 폭등세를 저지하고 오후에는 1,140원대로 끌어내릴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금융감독원은 악성 루머에 대한 단속에 착수했다. 미확인 루머가 가뜩이나 어려운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유관기관들과 합동 단속반을 구성해 증권사 객장에 직접 투입하는 등 악성루머에 대한 일제 단속에 나섰다.

   중점 단속사항에는 근거 없는 유동성 위기설 등 금융 불안을 조성하는 자료를 작성, 유포하는 행위가 포함됐다. 또 특정 기업에 대한 음해성 루머의 생산 및 유포나 객관적인 투자판단을 교란하는 자료의 배포도 들어갔다.

   송경철 금감원 부원장은 "시장의 자정 기능도 중요하지만 일부 악성루머로 인해 기업이나 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보고 시장이 혼탁해질 위험이 있어 단속에 나서게 됐다"며 "과거 발생한 악성 루머도 파악할 것"이라고 말했다.

   ◇ 총리도 소방수로 나서
한승수 국무총리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한 총리는 이날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경제부처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의 상황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와 같은 위기로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며 "9월 경제위기설은 뜬소문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환율이 오르고 국제수지와 경기가 나쁘고 주가가 빠지는 과정에서 위기설이 확장된 것으로 본다"며 "현재는 조정 국면이라고 생각하며 경제 위기를 불러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그는 "우리의 경제규모도 커졌고 적정한 외환 규모도 갖고 있다"고 설명한 뒤 "오히려 언론과 방송을 통해 경제 위기가 더욱 부풀려져 보도되고 있고 이 시점에서 진정하고 우리 경제의 실체를 보도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본다"며 협조를 구하기도 했다.

   앞서 신제윤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도 이날 오전 기자실을 방문해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과도하다"고 지적한 뒤 "9월 이후 경상수지가 좋아지고 외국인 증시 매도세도 악화되지 않는다면 외환 수급사정은 중장기적으로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당국은 또 9월 위기설의 발단이 된 국고채의 만기가 오는 10일을 전후한 시기에 집중돼 있는 만큼 이 달 중순부터는 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기대했다. 9월 위기설의 원인이 제거되는 만큼 시장도 심리적으로 진정될 것이라는 논리다.

   오는 11일 문을 닫는 국제통화기금(IMF) 한국사무소 소장도 정부를 위한 지원 사격에 나섰다. 메랄 카라슐루 소장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현재 한국의 단기외채 성격은 외환위기 당시와는 크게 다르며 관련 리스크(위험)는 과장되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최근 한국의 경상수지가 다소 적자로 돌아서고 원화 가치가 상당히 하락했으나 이 현상은 주로 높은 국제유가로 인한 어려운 국제상황과 교역조건의 현저한 악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경상수지 악화가 조정되지 않은 환율에 기인했던 지난 97년의 상황과는 굉장히 다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