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지구는 지쳤다. 정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힘 따윈 없다. 몸에서 열이 나도 막을 방법이 없다. 지구 곳곳에서 재앙이 벌어진다. 지구 한 쪽은 물난리가 나고 다른 쪽은 물 한 방울이 없어 메마른 바람만 분다.

영화 <지구>(감독/각본:알래스테어 포더길, 마크 린필드)는 그래서 탄생했다. 몇 십년 전까지만해도 지구를 화면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누구도 하지 않았을테다.

하지만 날로 지구가 죽어가고 있어 언제 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알래스테어 포더길은 "영화를 10년이나 20년 후에 제작한다면 이번에 큰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놀라운 영상은 찍을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고 마크 린필드 역시 "앞으로 50년 후엔 어떻게 될까. 50년 동안 지구를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영화는 46억년 전 지구가 행성과의 출동로 운명처럼 23.5°기울면서 생명이 만들어질 조건을 갖추게 됐다는 이론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구 온난화의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북극에서 1천100㎞ 떨어진 곳에 사는 북극곰 가족과 물을 찾으려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을 건너는 아프리카 코끼리 무리, 먹이를 먹기 위해 적도에서 남극까지 6천500㎞ 이상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가야 하는 혹등고래 가족이 주인공이다.

빙하가 녹은 탓에 사냥을 할 수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한 수컷 북극곰, 메마른 바람 속에서 무리를 잃고 길을 헤매는 어린 코끼리, 어미를 잃지 않으려 지느러미로 끊임없이 소리를 내는 새끼 고래. 단지 생존하기 위해 고통을 겪는 이들 앞에서, 잘난척 지구를 망쳐놨지만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들은 사소한 존재일 뿐이다.

영화 <지구>는 최근 개봉한 애니메이션 <월-E> 속 지구의 가까운 과거다. 온통 쓰레기로 뒤덮혀 있는 지구는 풀 한포기 자랄 수 없을만큼 피폐해졌다. 주인공 '월-E'가 지구를 청소한 지 700년이 흘렀을 때 지구는 겨우 보석같은 싹 하나를 피워낸다.

아마존에 사는 희귀한 새나 자연이 만들어내는 장관 등 이 영화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장면들이 화면에 가득하다.

이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4천500여 일이 걸렸다. 12년이 넘는 시간이다. 카메라멘 40명이 26개 나라 200여 곳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찍은 결과다. 영화 음악은 베를린필하모니가 맡아 장엄한 지구와 생명체들의 움직임을 음악으로 재치있게 표현해냈다. 영화배우 장동건이 한국판 내레이션을 맡았다.

이 순간에도 어미 잃은 새끼 고래를 안락사 시켰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혹등고래 처럼 플랑크톤을 찾아 수천㎞를 이동하다 제 어미를 잃었을지 모른다. 지구도 쉴 시간이 필요하다. 전체 관람가. 9월4일 개봉.

/소유리기자 (블로그)rainwo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