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더 고통스런 전술비행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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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에서는 계속 방송을 하는데 엔진소리에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에어컨은 시끄럽게 돌아가는데 찜통 같았다. 게다가 철모를 쓰고 방탄조끼를 입으니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육중한C-130 수송기가 굉음을 내면서 하늘로 오르기 시작했다 기내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는 원형의 작은 유리 창문 쪽에 앉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방탄조끼와 철모가 무거웠다. 방탄조끼는 앞 뒤 모두 강철로 되어있어서 웬만한 총알은 막아줄 것 같았다. 얼마를 더 가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명령을 받고 적진 깊숙이 낙하지점을 향해 날아가는 것 같았다. 나도 오늘만큼은 공수특전부대원이 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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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를 악물고 양쪽 관자노리를 엄지손가락으로 뚫어지게 눌렀다. 수송기는 점점 더 요동을 치며 곡예를 했다. 이렇게 죽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이 엄습해왔다. 적의 공격으로 수송기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죽음보다는 당장의 고통을 참아내는 게 더 큰 고통이었다.
그 와중에도 카메라 가방만큼은 한쪽 허리끈에 단단히 묶었다. 당장 죽는다 해도 무거운 철모와 방탄조끼를 벗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군인들은 단 한사람도 철모와 방탄조끼를 벗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그토록 요동치던 수송기는 엔진소리만 들릴 뿐 움직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방송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군인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철모와 방탄조끼를 모두 벗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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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기에서 나와 사방을 살펴보니 마스크를 쓰고 까만 선글라스에 방탄조끼를 입은 군인들이 소총을 겨누고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서야 살았다는 안도감으로 어지러움을 다소 잊을 수가 있었다.
맨 앞쪽에는 무장을 한 전차 1대와 그 뒤로는 우리의 봉고차 같은 차량이 3대, 찝차 2대가 엔진을 켜고 있었다. 이곳이 어디냐고 묻기도 전에 군인들은 준비된 차량에 빠르게 몸을 싫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삭막한 황색 벌판뿐이었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없었다. 운전석 옆에 탄 군인이 소개를 했다.
수송기가 도착한 곳은 '아르빌공항'이며 전쟁으로 모두 파괴되어 복구중이라고 했다. 민간 항공기는 이착륙이 금지되어있으며 군전용 공항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친절하고 세세히 설명을 해주어 불안을 다소 떨쳐버릴 수 있었다. 차량은 에어컨 상태가 좋아서인지 시원했다. 운전석 옆으로는 탄창이 꽃인 소총이 세워져있다. 일행을 태운 차량 앞쪽으로는 무장을 한 전차와 ?차 1대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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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정문을 지나니 양옆으로 두꺼운 방벽 뒤에 막사가 보일 듯 말듯 숨어있었다. '자이툰부대원' 들이 두 줄로 서서 환영을 했다. 부대장이 나와 일일이 악수를 했다. 쿠웨이트와 똑같이 불길 같은 더위는 마찬가지였다.
회의실에서 부대장의 간략한 인사와 설명이 끝난 후 부대 내의 정해진 숙소로 향했다. 나는 3인용숙소에 짐을 풀었다. 장교 2명과 함께 묵게 되었다. 마침 옆 건물에 숙소가 정해진 Y공군 대령에게 C-130수송기의 비행에 관하여 묻고 난 후 그 의문이 풀렸다. C-130 수송기가 갑자기 요동을 치면서 오르락내리락하여 멀미와 구토로 큰 고통을 경험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전투지역에서는 수송기가 착륙하기 전 적으로부터 공격을 피하기 위한 '전술비행훈련'을 한다고 했다.
생전처음 '전술비행훈련'을 경험한 나는 두 번 다시 그 수송기를 타고 싶지 않았다. C-130수송기 조종사와 승무원들은 허구한날 '전술비행훈련'을 해야 하니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쇄 된 하얀 종이 한 장을 주면서 읽어본 후 서명하라는 의문이 풀린 셈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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