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더 고통스런 전술비행훈련
1 자이툰부대 정문 앞에는 무장을 한 장갑차가 버티고 서있다.
허리를 굽히고 수송기 안으로 들어가니 양쪽으로 의자가 있으며 배선이 어지럽게 얼기설기 묶여있다. 얼룩무늬 비행복을 입은 한 사람이 인쇄 된 종이 한 장을 주면서 읽고 난 후 서명을 하라고 했다. 그 인쇄물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 같았다. '비행도중 적의 공격이나 전술비행으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으니 그 결과에 대하여 모두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내용이었다. 서명을 하면서도 불안감이 조금씩 밀려왔다.

기내에서는 계속 방송을 하는데 엔진소리에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에어컨은 시끄럽게 돌아가는데 찜통 같았다. 게다가 철모를 쓰고 방탄조끼를 입으니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육중한C-130 수송기가 굉음을 내면서 하늘로 오르기 시작했다 기내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는 원형의 작은 유리 창문 쪽에 앉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방탄조끼와 철모가 무거웠다. 방탄조끼는 앞 뒤 모두 강철로 되어있어서 웬만한 총알은 막아줄 것 같았다. 얼마를 더 가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명령을 받고 적진 깊숙이 낙하지점을 향해 날아가는 것 같았다. 나도 오늘만큼은 공수특전부대원이 된 듯 했다.

2 울퉁불퉁한 운동장에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두 줄로 세워 놓은 차량의 행렬.
방송이 시작되었다. '이라크 아르빌공항'에 잠시 후 착륙한다는 내용이었다. 안전밸트를 단단히 묶고 철모를 눌러썼다. 함께 탄 장교들은 모두 검은 선글라스를 ?㎢? 수송기가 갑자기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좌우로 혹은 거꾸로 처박히는 것 같았다. 어지러워 토할 것 같았다. 함께 탄 군인들은 어느 누구도 말이 없었다. 군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양쪽 관자노리를 엄지손가락으로 뚫어지게 눌렀다. 수송기는 점점 더 요동을 치며 곡예를 했다. 이렇게 죽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이 엄습해왔다. 적의 공격으로 수송기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죽음보다는 당장의 고통을 참아내는 게 더 큰 고통이었다.

그 와중에도 카메라 가방만큼은 한쪽 허리끈에 단단히 묶었다. 당장 죽는다 해도 무거운 철모와 방탄조끼를 벗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군인들은 단 한사람도 철모와 방탄조끼를 벗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그토록 요동치던 수송기는 엔진소리만 들릴 뿐 움직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방송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군인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철모와 방탄조끼를 모두 벗기 시작했다.

3 부대 정문 앞에서 자이툰부대에서 일 할 아르빌시민을 면접하고 있다.
나도 따라서 철모와 방탄조끼를 벗었다.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증상은 멈추지 않았다. 수송기 꼬리 쪽의 육중한 문이 열렸다. 열기가 수송기 안으로 확 밀려왔다. 군인들이 하는대로 따라서 행동을 했다.

수송기에서 나와 사방을 살펴보니 마스크를 쓰고 까만 선글라스에 방탄조끼를 입은 군인들이 소총을 겨누고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서야 살았다는 안도감으로 어지러움을 다소 잊을 수가 있었다.

맨 앞쪽에는 무장을 한 전차 1대와 그 뒤로는 우리의 봉고차 같은 차량이 3대, 찝차 2대가 엔진을 켜고 있었다. 이곳이 어디냐고 묻기도 전에 군인들은 준비된 차량에 빠르게 몸을 싫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삭막한 황색 벌판뿐이었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없었다. 운전석 옆에 탄 군인이 소개를 했다.

수송기가 도착한 곳은 '아르빌공항'이며 전쟁으로 모두 파괴되어 복구중이라고 했다. 민간 항공기는 이착륙이 금지되어있으며 군전용 공항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친절하고 세세히 설명을 해주어 불안을 다소 떨쳐버릴 수 있었다. 차량은 에어컨 상태가 좋아서인지 시원했다. 운전석 옆으로는 탄창이 꽃인 소총이 세워져있다. 일행을 태운 차량 앞쪽으로는 무장을 한 전차와 ?차 1대가 달렸다.

4 모든 건물은 두꺼운 방벽으로 쌓아놓아 적의 공격에 철저히 대비해 놓았다.
공항에서 이십여 분을 꼬불꼬불 돌고 돌아서 도착한곳은 '자이툰부대' 정문이었다. 힘찬 구호와 함께 차량이 멈췄다. 인원체크를 하고 이상유무를 확인한 경계병들이 육중한 바리케이트를 밀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정문을 지나니 양옆으로 두꺼운 방벽 뒤에 막사가 보일 듯 말듯 숨어있었다. '자이툰부대원' 들이 두 줄로 서서 환영을 했다. 부대장이 나와 일일이 악수를 했다. 쿠웨이트와 똑같이 불길 같은 더위는 마찬가지였다.

회의실에서 부대장의 간략한 인사와 설명이 끝난 후 부대 내의 정해진 숙소로 향했다. 나는 3인용숙소에 짐을 풀었다. 장교 2명과 함께 묵게 되었다. 마침 옆 건물에 숙소가 정해진 Y공군 대령에게 C-130수송기의 비행에 관하여 묻고 난 후 그 의문이 풀렸다. C-130 수송기가 갑자기 요동을 치면서 오르락내리락하여 멀미와 구토로 큰 고통을 경험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전투지역에서는 수송기가 착륙하기 전 적으로부터 공격을 피하기 위한 '전술비행훈련'을 한다고 했다.

생전처음 '전술비행훈련'을 경험한 나는 두 번 다시 그 수송기를 타고 싶지 않았다. C-130수송기 조종사와 승무원들은 허구한날 '전술비행훈련'을 해야 하니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쇄 된 하얀 종이 한 장을 주면서 읽어본 후 서명하라는 의문이 풀린 셈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