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설실에서 ▧
공기업을 개혁하자는 데 이의를 달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듯싶다. 이는 공기업 구성원 스스로 방만한 경영과 각종 비리 등에 연루되면서 그 '화급성'을 자초한 면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기업 개혁에 국민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해도 이는 당위론적인 면에 국한될 뿐이다.

정부가 공감대 형성과 화급성만을 앞세워, 쥐어준 칼자루를 아무렇게나 휘두르면서 국민적 동의를 얻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어설픈 개혁추진은 성공보다 갈등과 반목만 더 키운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경험칙을 놓고 보면 공기업 개혁의 성패는 여론향배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개혁추진에 앞서 공기업 비대화 현상과 근본 치유책, 개혁대상기업의 효율성 제고방안 등 이른바 '과학적 근거'를 내놓고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은 필수이다. 이를 전제로 현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추진계획을 보면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지난 5월말께로 예상됐던 개혁안이 계속 미뤄지더니 지난 6월에는 용어마저 '선진화'로 바뀌었지만 그 배경이 모호하다. 11일 발표된 개혁안에는 개혁작업의 필수라 할 과학적 근거 제시 또한 미흡했다. 발표 당일 오전 당정협의회를 거치면서 인천국제공항 등 8개 기업이 부랴부랴 추가된 것도 개혁안에 대한 신뢰와 설득력을 반감시키는 요인이었다.

이러니 비판여론이 비등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국민들을 더 황당하게 만든 것은 정부와 여당의 후속대응이었다. 정치권으로부터 졸속추진 비판이 거제지자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은 "오늘 발표한 것은 시안일 뿐이다. 변경될 가능성도 있다"며 꼬리말기에 급급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런 데도 비난이 가라앉지 않자 이번에는 여당이 나서 예의 설거지론을 주장했다. 민영화는 이미 지난 정부때부터 추진해 왔던 것인데 왜 우리만 닦달 하느냐는 투다. 억지와 다름없다. 뒤늦게 부랴부랴 내놓은 과학적 근거조차 '거짓'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비록 1차 안에 불과하다지만 그 내용과 정부의 대응자세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게 한다. 과연 저러고도 공기업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단 것인지.

공기업 개혁은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공약이다. 그리고 정부의 강한 의지가 전제되지 않는 한 성공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정부와 여당은 추진과정을 더 지켜봐달라 애원섞인 호소를 하고 있지만 추진계획이 이 정도라면 그 전도가 어떨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다 이대통령과 현정부의 별칭이 불도저에서 갈팡질팡 또는 설거지 정부로 바뀌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김홍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