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이야기
2009년 제 81회 아카데미상 외국어 영화상 부문 한국 출품작으로 김태균 감독의 <크로싱>이 선정되었다. 다른 4편의 후보작들은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 곳에>,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총 7인으로 구성된 선정 심사위원회(위원장 한상준)의 일원으로, 이 지면에서나마 <크로싱>엔 큰 축하를 나머지 네 영화에는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영화진흥위원회 사이트(www.kofic.or.kr)에 발표된 심사 총평에도 밝혔듯, 이번 심사의 대전제는 "(상업적, 미학적, 혹은 예술적으로) 가장 우수한 작품 한 편이 아니고,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공식 후보작 5편 안에 포함되고 나아가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품'을 가려낸다"는 것이었다. 달리 말해 '전략적 접근'의 필요성에 모두 동의하고 논의를 진행한 것이다. 그 대전제에 공감해서일까, 으레 매체들로부터 터져 나오곤 했던 이러저런 불만성 뒷말들이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소의 주저 끝에 심사 제의를 받아들였을 때, 내심 은근히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판단을 내리든 욕을 먹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예년의 사례들을 떠올려보면, 늘 그랬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단 한 차례도 우리 영화는 그 부문 후보작 군에 포함되지 못했는데, 그 탓이 마치 심사위원회가 적절치 못한 후보작을 결정해서인 것 마냥 크고 작은 비판ㆍ비난이 제기되어 왔던 것이다.

이번 선정도 마찬가지다. 그 어느 해보다 확률이 높을 거라는 판단을 하는 심사위원도 없진 않지만, 과연 <크로싱>이 최종 후보작 대열에 진입할 수 있을지 여부는 솔직히 자신할 수 없다. 세계 각 국에서 엄선에 엄선을 거쳐 모여든 40편 가량의 예비 후보작들 중 겨우 5편이 뽑힌다는데 그게 어디 쉽겠는가. 그것도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데다 고령이기 십상이라는 아카데미 선정 위원회의 어떤 취향에 완벽히 부응해야 하거늘.

영화적 만듦새에서는 대체로 '최상'의 평가를 받은 <추격자>가 일찌감치 논의 대상에서 밀린 까닭은 그 때문이었다. 여러 모로 '2008년의 한국 영화'로 손색없을 문제작이건만, '아카데미상의 정치학' 등을 고려해도 어쩔 수 없었다.

<님은 먼곳에>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휴먼 드라마라는 점 등에선 제법 유리할 법도 하나, 미국인들에겐 일종의 트라우마라 할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는 점이 결정적 장애였다. 적잖이 자존심 상했지만, 그들이 중시할 요소들을 최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세 작품을 대상으로 2차 논의를 거친 결과, 심사위원단은 "미국 내에서의 배급 및 상업적 성공 가능성의 측면에서, '탈북자를 둘러싼 인권의 문제'라는 주제의 인지도 및 보편성의 측면에서, 그리고 이 정치적 소재가 아카데미 회원들을 비롯한 미국인들에게 상대적으로 큰 호소력을 지닐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이견 없이 <크로싱>을 출품작으로 결정했다." 모쪼록 이번 결정의 결과가 좋기를 바란다면, 지나치게 나이브하며 굴종적인 걸까. 잘 나봤자 미국이라는 나라의 영화잔치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