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석의 지구촌
세토내해(瀨戶內海)에 위치한 도시 구라시키(倉敷)는 일본의 전통문화가 집약적으로 잘 보존된 도시로 꼽힌다.

구라시키에 있는 오하라(大原) 미술관은 일본 최초의 서양미술 중심의 사립미술관이다. 1930년대에 개관된 오하라 미술관을 처음 찾았을 때 모네, 고갱, 마티스, 르느와르 등 프랑스 인상파 화가의 작품들은 물론 엘그레코, 세겐티니, 로댕 같은 대가들의 작품들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구라시키를 무대로 사업을 벌였던 오하라 마고사부로(大原孫三郞)는 친한 친구였던 화가 고지마 토라지로(兒島虎次郞)를 세 번에 걸쳐 유럽 여행길에 오르도록 재정적 도움을 주었다.

고지마는 유럽에서 작품 제작에 몰두하면서도 오하라의 부탁을 받고 당대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일본인의 정서와 감각'을 가지고 수집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세잔느의 대표작을 일본에 보냈고 모네를 찾아가서는 일본의 정취가 풍기는 수련(水蓮) 작품들을 구입하는가 하면 르느와르에게는 미리 작품을 주문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전(神殿)식으로 설계된 본관에는 고지마가 직접 사들인 인상파 대가들의 작품들이 현란한 분위기로 전시되고 있고, 분관에서는 근대 일본의 대표적 화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지난주 두 번째로 오하라 미술관을 찾았을 때에는 수십 명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미술관 학예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진지한 모습으로 작품들을 보고 있었다.

한세기 전에 벌써 유럽에서 미술품을 사들인 일본인들의 저력도 놀랍지만 개관이후 지속적으로 소장품을 늘리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현장 미술 교육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화가 친구를 유학 보내고 그를 통해서 수집한 작품으로 미술관을 설립한 사업가 오하라의 안목(眼目)과 인품(人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