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칼럼 - 예지연역학교실/예지연원장
대저 세상이란 진기한 재주를 품고 있다 해도, 소박하여 화려하지 않거나 표현이 졸렬하면 아무리 정미한 이론과 깊은 뜻이 담겨 있다 해도 역시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

말재주나 글재주란 학문을 완성시키는 일종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지만 학리와는 상관이 없다 해도 수단에 결함이 있다면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게 된다.

학문이란 본시 일생동안 정력을 쏟아 이론을 모으고 경험을 통해 얻어야 한다, 그럼에도 스스로 체험하지 않고 스스로 본 것도 없으며 들은 것도 없이 논한다면, 그러한 것들이 어찌 학문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치에 의문을 갖지 않고 답만 구하려 한다면 이는 근본을 버리고 지엽을 쫓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또 경험만을 주장하고 원리를 모른다면 그리되는 것이로구나 하는 정도는 알지만 왜 그렇게 되는 것인지 그 까닭을 모르게 된다.

예컨대 물체를 투시하는 광선을 우리는 지금 X광선, 즉 미지수의 광선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하물며 인간의 운명을 논하는 명리학에 있어서 가장 근본이 되는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가 인간의 운명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 원리의 이치를 규명하지 못한다면 역시 학문이라 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명리학의 원칙은 명국 전체의 조화와 중화, 오행의 고른 배합과 유행(流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간지(干支) 하나하나의 성정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행의 정론이외의 수많은 신살(神殺)과 흉살(凶殺) 등의 잡다한 이론이 많아 후학들의 연구에 적지 않은 지장을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연을 근거로 오행의 정론에 따라 판단해야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혹 오류를 범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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