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란편 총론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고 했던가. 그래서 이웃과 접촉하고 새로운 이웃을 찾아 나선지 수천 년. 그 결과 천지사방에 길이 생겼다. 길은 저마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그 목적은 분화와 통합의 과정에서 수시로 변한다. 어제의 침략길은 오늘의 우호길이 되고, 어제의 국경로는 오늘의 교역길이 되기도 한다. 희노애락을 겪는 인간처럼 길도 흥망성쇠의 생명을 가진다. 인류의 역사에 필적하는 길은 무엇인가. 서슴없이 '실크로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류의 대다수가 그들의 문명을 공유하고 전파하며 발전시킨 지구상에서 가장 길고 큰 길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민족이 소멸해도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일어나는 길. 과거 영화롭던 시대를 갈구하는 뜨거운 기운이 넘치는 길. 21세기 새롭게 열릴 실크로드의 핵심부인 중앙유라시아. 인천일보가 지난해부터 '실크로드에서 인천을 생각한다'는 주제로 이 광활한 대지를 찾아 나섰다. 우리의 인천이 21세기 글로벌시대를 맞이하여 新실크로드의 시작점과 종착지의 역할을 수행할 최고의 지정학적 요건을 갖춘 곳이기 때문이다. 
      


취재단은 지난해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 나라를 탐사했다. 그리고 올해는 서남아시아의 핵심이자,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영화가 깃든 이란을 탐사했다. 고양이가 앞발을 세우고 앉아 있는 듯한 나라. 서구문명과 충돌하며 동방문명을 꽃피운 고대 페르시아의 영광과 자부심이 넘치는 나라. 우리는 12일간의 짧은 기간에 한반도의 8배에 달하는 이란의 3분의 2를 돌았다.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더위를 참고 하루 평균 1천㎞가 넘는 여정을 강행했다. 도로는 고도 2천m가 넘는 험준한 산맥을 내달렸다. 물은 고귀하여 뜨거운 식수일지언정 진심으로 신께 감사했다.
우리의 취재는 테헤란에서부터 집중되었다. 7천만 인구 중 1천200만명이 거주하는 수도 테헤란은 매우 활기찼다. 이란의 상징과도 같은 검은색 차도르를 입은 여인들이 거리 곳곳에 분주하다. 지방은 물론 수도인 이곳에서도 차도르를 입은 여인들을 촬영할 수 없다. 이란 문화의 독특성이 차도르 속에 숨어있으리라.
'세계의 절반'이라는 이스파한은 페르시아 특산물인 카펫이 유명한 곳이다. 카펫 한 장을 만드는 데 몇 년, 아니 10년 이상도 걸린다고도 하니 페르시아 카펫 원산지로서의 자존이 오늘도 묵묵히 그 값어치를 말해주고 있다. 16세기 압바스1세 때 조성된 이맘광장은 이란 최초의 고층건물로서 귀빈들을 맞이하던 영빈궁이었다. 이곳에서 관람하는 폴로경기는 아주 유명한데, 돔식 천장에는 수천 개의 도자기 모양을 한 구멍을 뚫어 바람소리로 연주실을 만들었다. 페르시아 조형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생명수와도 같은 자얀데 강에 있는 시오세폴 다리는 이란인들의 훌륭한 쉼터이다. 이곳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순수하고 여유로운 모습의 이란인들이 각자의 여가문화를 만끽하고 있다. 남녀칠세부동석의 관습이 남아 있는 곳, 술은 물론 알콜 음료조차 마실 수 없는 이란인들의 여가문화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야즈드는 신성의 땅이다. 이는 곧 조로아스터교의 발원지이자 성지이기 때문이다. 조로아스터교의 상징인 아테슈카데 사원 안에는 1천532년 된 불씨가 아직도 꺼지지 않은 채 타오르고 있다. 엄숙함이 더하는 침묵의 탑은 조로아스터교 신도들의 장지로서 조장(鳥葬)이 행해지는 곳이다. 이원론적 세계관의 조로아스터교는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뿐 아니라 불교에도 영향을 주었다. 실크로드가 종교의 전파에 우선적인 공로자임을 추적해 볼 것이다.   

 

 


사자산이라는 뜻을 가진 시르쿠흐는 석류의 원산지이다. 페르시아가 원산지인 석류는 생명과 지혜의 과일로 알려져 있다. 동양에서는 다산(多産)을 의미하기도 했다. 석류의 동양전파와 그 의미를 찾는 일 또한 동서교류의 맥락을 집어보는 데 중요한 의미를 줄 것이다.
페르시아의 얼굴인 쉬라즈는 페르세폴리스로 유명하다. '페르시아의 도시'라는 뜻의 페르세폴리스는 세계적인 관광명소답게 이란의 어느 유적지보다도 외국인이 많은 곳이었다. 다리우스 1세 때인 기원전 518년부터 짓기 시작한 이곳은 60년이 지나 손자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때 완성되었다. 유라시아에 최초의 세계 통일제국을 세웠던 아케메네스 조 페르시아는 페르세폴리스의 건설을 통해 세계의 중심을 선언한 것이었다. 그리고 실크로드를 통해 이곳의 문명이 조화롭게 소통되었던 것이다. 쉬라즈는 장미의 도시다. 정원마다 장미 향기가 가득하다. 장미의 도시답게 이란인의 사랑을 받는 위대한 시인인 사디와 하페즈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란인들은 이 두 위대한 시인을 숭상한다. 그들의 관위에 손을 대고 그들이 쓴 시를 암송한다. 그러면서 마음속의 한을 풀고 축복의 미래를 기원한다. 시인의 영묘를 찾아 생각을 정리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일은 일상생활과도 같다. 시인을 숭상하는 이들의 수준 높은 문화예술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비샤푸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메소포타미아 유적지는 이라크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전쟁으로 탐사가 불가능하다. 인류의 문화유산이 시시각각 파괴되고 있는 안타까운 시점에서 이곳의 유적을 통해서나마 인류문명의 핵심과도 같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수사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유적이 있는 곳이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건축기법은 우리나라 고구려의 그것과 많은 점에서 흡사하다. 고구려가 강대국이던 4세기, 초원길은 열려 있었고 고구려인과 페르시아인이 조우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돌을 쌓아 만든 각종 건축물은 너무도 유사하여 두 나라간에 교류가 있었음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국내 학계 최초로 고구려와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문명교류의 흔적을 밝힐 것이다.

 

 


이밖에도 페르시아 탐사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다. 고대 페르시아를 지나 바빌로니아까지 이어졌던 로얄 로드의 흔적과, 다리우스 황제가 국내를 통일하고 그 위세를 드높이고자 로얄 로드가 지나는 길 옆 바위산에 조각한 비쉬튼 벽화의 생생함, 케르만샤에서 만난 한류에 빠진 이란인들의 해맑은 모습, 유전과 가스매장량이 세계적 수준인 대국이 펼치는 에너지 정책, 그리고 이란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의 활동상과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가 천국인 이란의 모습 등이 본 지면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될 것이다.
실크로드는 도시문명의 흥망과 그곳에서 산 인간 군상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실크로드는 지엽적이고 편협한 길이 아니다. 물자는 물론 인간과 문화, 종교와 사상 등 모든 것이 소통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담론을 실어 나르는 거대한 물류(物流)의 길이었다. 이제 新실크로드는 물류의 토대 위에 인류의 화합을 도모하는 공동의 비전을 가지고 지구촌을 소통시켜야 한다. 이러한 실크로드의 중차대한 목적을 위해 대한민국이 나서야 하며, 그 최전선에 인천이 있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지원:지역신문발전위원회
인천일보 이란 특별취재팀
남창섭 인천일보 정치부 기자 csnam@itimes.co.kr
윤용구 인천시립박물관 학예연구실장
yongguyun@hanmail.net
허우범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행정실장
appolo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