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광선샌님 안데스산맥 종단기
나는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를 안데스산맥을 계속 내려다보면서 카메라의 셔터를 수 없이 눌렀다. 구름사이로 만년설을 덮고있는 웅대한 안데스산맥이 내려다보이고 산맥사이에 긴 빙하가 흐르고 있다. 그 빙하의 끝에 빙하호(氷河湖) 그리고 강이 보인다.

2006년 1월 25일 (수, 제23일)
오늘 오전에는 푼타아레나스를 둘러보고 오후에 항공편으로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가려고 한다. 이제 내일이면 이번 여행도 끝나고 귀국 길에 오르게 된다.
아르마스 광장(Praza de Armas)에 나갔다. 광장가운데 마젤란의 동상이 높이 서있다. 대포 위에 발을 올려놓은 마젤란의 발 밑에는 인어상(人魚像)이 있고, 그 양쪽에 이 지방 원주민이 한 사람씩 앉아있다. 이 동상은 19세기 후반, 푼타아레나스가 전성기였던 시기의 부자, '브라운 메넨데스'가 기부한 것이다. 정복자와 피정복자를 또렷이 그리고 참혹하게 표현한 이 동상은 오늘도 아르마스 광장을 찾는 많은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오른쪽에 발을 내리고 있는 원주민의 발을 만지면 『무사히 항해를 마친다 = 행복하게 된다』고 전해져 내려와 이곳에 온 사람들이 하도 많이 만져서 발끝이 빤짝빤짝 빛나고 있다. 나도 이번 여행의 안전과 이곳을 다시 찾게되기를 바라면서 빤짝거리는 원주민을 발을 만졌다.
마젤란해협이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왔다. 이곳은 지구의 '땅끝'이다. 항공편을 이용하여도 인천공항까지는 36시간이상 걸리는 먼 곳이다. 언덕에는 두 개의 긴 기둥이 세워져 있고 세계의 여러 도시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붙어있다. 그 이정표에는 이곳으로부터 거리가 적혀있다. 런던, 파리, 로마, 모스크바, 뉴욕, 몬트리올, 도쿄, '베이징'을 가리키는 판자는 보이나 눈을 비비고 보고 또 보아도 서울은 없다. 몹시 서운하다. 언덕 바로 아래 경사면에는 작은 집들이 겹겹이 서있고 그 집 너머 마젤란해협이 건너다 보인다. 육지 가까운 바다에 배가 몇 척 보일 뿐 대형선박은 보이지 않는다.
오후 12시 50분, 푼타아레나스 공항을 이륙하였다. 우리 비행기는 이륙하고 바로 안데스산맥을 따라 북쪽으로 비행하고 있다. 이 번에도 운이 좋아 창가좌석에 앉게 되었다. 나는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를 안데스산맥을 계속 내려다보면서 카메라의 셔터를 수 없이 눌렀다. 구름사이로 만년설을 덮고있는 웅대한 안데스산맥이 내려다보이고 산맥사이에 긴 빙하가 흐르고 있다. 그 빙하의 끝에 빙하호(氷河湖) 그리고 강이 보인다.
높은 산이 세 개 나란히 나타났다. 일본의 후지산을 닮은 오소르노 산(Volcan Osorno, 해발2852m)이다. 그 옆에 조금 낮으나 끝이 뾰족한 훈티과드 산(해발2190m), 그리고 칼부코 화산(Volcan Calbuco, 해발2015)이 모두 횐 눈을 덮고 있다. 지난 1월 16일과 17일에 들렸던 푸에르토몽트에 온 것이다. 우리 비행기는 40분만에 푸에르토몽트에 잠시 기착하였다가 곧 이륙했다. 그리고는 다시 안데스산맥 위를 날아 4시간 40분만인 오후 5시 25분, 지난 1월 14일 잠시 기착했던 산티아고(Santiago, 해발520m)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칠레교포가 운영하는 식당, '평양면옥'으로 직행했다. 지난 1월 3일 한국을 떠났으니 오늘이 22일째이다. 그 동안 한 번도 한국음식을 먹어볼 기회가 없었다. 오랜만에 김치, 된장찌개, 냉면, 밥 등 우리음식을 대하니 모두 반가운 모양이다.
칠레는 파타고니아 북쪽에 아타카마 사막, 남쪽에는 빙하가 대지를 덮고 있으며 동쪽에는 남미대륙의 최고봉 아콩카쿠아 산(해발6959m)이 솟아있고 서쪽에는 태평양이 있는 과혹한 자연이다.
오늘 도착한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는 칠레의 가운데 있는 인구 550만의 큰 도시이다. 이곳도 우리나라와 같이 4계절이 있으나 지중해성기후이므로 비교적 온난하며 겨울이라도 눈이 쌓이는 일은 거의 없다. 일년 중 300일 이상 개인 날이 계속되나 분지에 있는 도시이므로 공해가 심하다. 특히 겨울의 주말 오후에는 아무리 개인 날이라도 공해 때문에 안데스의 산들은 희미하게 보인다. 그러나 한 번 바람이 불면 산티아고 뒤에 솟아있는 안데스의 산들이 깨끗하게 보인다. 아침저녁에는 기온이 많이 떨어진다.
산티아고는 황금을 찾아 남미에 온 스페인의 '페드로 데 발디비아'(Pedro de Valdivia)가 1541년에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는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를 지나고 안데스를 넘어 산티아고에 도달하였다. 0l 침략자와 그 자손에 대해 이곳 선주민(先住民)인 아라우카노(Araucano) 족은 집요하게 저항을 계속하였다. 당시의 '요새 터'가 지금은 '산타 루시아의 언덕'(Cerro Santa Lucia)라는 공원으로 되어있다. 산티아고 중심부에는 거의 현대적인 건축물이 서있으나 식민지시대의 '코로니얼 양식' 건축물도 많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