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에서 군인들이 몹쓸 짓을...
숲속에서 군인들이 몹쓸 짓을...
  • 승인 200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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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유키코-15
 어디선가 소쩍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아주 구슬프고 애잔하게 들려왔다. 유키코가 걸음을 멈추며 입을 열었다.
 “아직 멀었어요?”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습니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요.”
 유키코는 무척 힘겨운 듯 비틀거렸다. 더구나 그녀의 무릎과 다리에는 크고 작은 상처 투성이였다. 나는 길가에 있는 바위를 가리켰다.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갑시다.”
 유키코는 힘없이 바위 위에 주저앉았다. 나는 바위에 앉아 있는 그녀를 측은한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어쩌다가 나를 만나고, 이렇게 허둥지둥 도망치는 처지가 되었는가를 생각했다. 혹시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생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한 도시가 소요에 휩싸이고, 또 총소리가 난무하는 아비규환으로 변했지만,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더구나 유키코는 재일교포이고 고국을 여행하는 한사람의 손님일 뿐이다. 유키코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어쩌다 한국의 유혈사태 안에 있으며, 그 참극으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는가를. 나는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감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시커먼 불길이 솟아오르는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불타는 도시는 저녁노을을 받아 더욱 더 평화스러웠다. 그것은 불을 지르고 사람을 죽이고 폭력을 휘두르는 살벌한 도시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 도시는 평화스럽다 못해 고즈넉해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평화와 평온이 찾아온 것처럼. 그녀와 나는 그런 도시를 내려다보며 우리가 그 도시를 탈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것은 잠시 동안 우리에게 찾아온 평온이고 평화였다. 그러나 그 정적과 평화는 금방 깨지고 말았다.
 “이거 왜 이래요?”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숲속의 정적을 흔들었다. 유키코와 나는 동시에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나 울창한 숲속에서 들려온 소리는 그 근원을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소리가 난 쪽을 향해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우리가 이 도시로부터의 탈출자라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아 악… 사람…”
 다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울창한 관목 사이로 공터가 보이고, 거기에서 인기척이 들리고 있었다.
 “가만히 있지 못해?”
 남자의 우악스런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이어서 여자의 가녀린 흐느낌도 뒤따라 들려왔다. 여자를 폭행하고 있는 건, 얼룩무늬 군복을 착용한 군인이었다. 그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애를 쓰러뜨리고 강간을 하는 중이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그들 뒤쪽 숲에 총을 든 군인이 한두 명 더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마치 장난을 치듯 어린 여자애를 차례로 겁탈했다. 그리고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여자애를 끌고 산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유키코는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그녀의 얼굴은 하얗다 못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우리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귀청을 찢는 듯한 총성이 코앞에서 울렸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재빨리 수풀 속에 엎드렸다. 그리고 다음상황을 기다렸다. 그러자 권총을 든 청년이 숲을 뛰쳐나와 도망치는 게 보였다.
 “놈이 어디로 갔지?”
 군인들의 목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그들은 방금 전에 도망친 청년을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들은 숲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청년을 찾았다. 그러나 청년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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