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손을 잡은채 걸었다
우리는 손을 잡은채 걸었다
  • 승인 200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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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쩔 수 없이 도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미스안의 말은 맞는 것이었다. 아니, 지금으로서는 그길 밖에 없었다. 이 혼란의 도시를 벗어나는 길은. 나와 유키코는 미스안이 해주는 밥을 먹고 저녁때가 되기를 가다렸다. 그리고는 미스안이 일러준 대로 ××리 쪽을 향해 출발했다. 그것도 어둑어둑해진 저녁 시간대에. 물론 그 코스는 미스안의 동생이 계엄군의 포위망을 뚫는 루트이기도 했다. 미스안은 우리에게 동생이 선택한 길을 알려주었다. 자신이 일년 전에 저지른 잘못을 갚는다는 의미에서. 아니, 나와 전우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아무튼 나는 곤경 속에서 미스안을 만났고, 그녀의 환대를 받으며 다방을 나섰다. 물론 미스안은 또 다시 도청 앞으로 달려 나갔다. 시민군들에게 밥과 음식물을 전달해야 한다며. 아무튼 미스안을 광주에서 만난 건 천만다행었다. 그녀마저 없었더라면 우리는 더욱 곤란한 지경에 바졌을 테니까. 나와 유키코는 해기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시 외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난리가 따로 없군.”
 나는 걸음을 옮기며 유키코를 힐끗 쳐다보았다. 유키코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씨익 웃어 보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길거리는 시민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거리를 쏘다녔다. 어떤 이는 몽둥이를 들고 있었으며, 어떤 사람은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것은 지난밤의 공포와 살벌함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는 손을 잡은 채 그들 사이에 섞여 걷고 또 걸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도심을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도시 외곽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도시 외곽이 도심보다 한층 더 격렬하게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게 간헐적인 전투였지만, 총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왔다. 더구나 계엄군은 바리게이트까지 쳐놓고 시내와 외곽을 차단한 상태였다.
 “이제 어떡하죠?”
 유키코는 바리게이트를 바라보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녀와 나의 행색을 훑어보았다. 우리의 몰골은 누가 보아도 도망자의 그것이었다. 아니, 도망자가 아니라, 시민군 특유의 복장이고 차림새였다. 나는 머리를 저었다. 이대로 바리게이트를 통과할 수는 없다. 지금의 행색으로 가다가는 폭도로 오인받을 게 불을 보듯 뻔했으니까. 더구나 계엄군에게 연행되면 모든 게 끝장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계엄군은 폭도로 보이는 젊은이들은 무차별로 폭행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한다는 거였다. 나는 탈출로를 야산 쪽으로 잡았다. 그리고 계엄군이 보이지 않는 산길을 따라 걸었다. 조금만 있으면 날이 어두워질 것이다. 그러면 계엄군의 포위망을 뚫기도 한결 쉬워질 터였다.
 “날이 좀더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유키코는 무척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어두워져도 빠져나가기 힘들어요. 지금이 적당한 시간이에요.”
 “그렇지만… 지금 나가다 잡히면.”
 “아마 괜찮을 겁니다. 이쪽 산길은 인적이 드무니까요.”
 “……”
 우리는 수풀이 우거진 소로를 따라 걸어갔다. 산길은 본래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주된 통로였던 것 같았다. 그런 게 우회 도로가 뚫리면서 소로로 변했고, 이제는 등산객이나 오가는 정도의 협로로 변해 있었다. 그것은 산길을 따라 울창하게 솟아 있는 관목과 잡초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길을 가로질러 뻗어 있는 칡넝쿨과 딸기넝쿨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듯 제멋대로 자라 있었다. 우리는 우거진 관목과 가시나무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관목 숲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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