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유키코-9
 (제93회)
 “여기 사람들이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왔죠?”
 주인 여자는 말을 하고 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인상인데… 혹시?”
 “아, 이거 미스 안이 아닙니까?” “어머, 최병장님이잖아요.”
 주인 여자는 뜻밖이라는 듯이 탄성을 질렀다. 나는 소파에 앉아 있다가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주인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렇다 그녀는 바로 미스 안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내가 근무했던 부대를 풍비박산 내고 사라진 여자. 공일병과 심하사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대대장과 포대장, 그리고 소대장과 선임하사와 나까지 이등병 제대를 하게 만든 당사자. 그 여자가 광주에서 다방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광주 시내 한가운데서. 나는 이 기이한 인연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어쩌다가 삼촌의 일을 돕게 되었고, 뜻하지 않은 소요사태에 휘말려 도망자 신세가 되었는가를. 아니, 어쩌다가 미스안 같은 여자를 만나 인생의 쓴맛을 보고 있는가를. 미스안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최병장님 맞죠?”
 “나는 그렇다 치고… 미스안은 어떻게 된 겁니까?”
 “정말 맞는구나.”
 미스안은 믿믈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마치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멀어져 갔던 확성기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나는 잠시 확성기 소리에 기를 기울였다. 그러나 무슨 내용을 방송하는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가두방송이 구청에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압군 쪽에서 하는 선무방송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허지만 확성기 소리는 끊어질 듯 하면서도 계속 들려왔다. 미스안이 강개무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최병장님을 여기서 만나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그건 나도 마찬가집니다.” “부대가 풍비박산났다는 얘긴 들었어요.”
 “아, 네에…”
 “최병장님도 피해자 중 하나죠?”
 “나야 뭐…” “나도 사실… 무척 미안하단 생각은 했어요.” “미스안이 왜요?” 나는 짐짓 모른 척하고 물었다. 그러자 미스안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녀도 자신이 저지른 짓거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아니, 부대가 풍비박산 나고 해체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 분명했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은 어둡고 우울해 보였으니까. 우리가 말을 주고받는 사이 유키코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쪽으로 갈아갔다. 그리고는 식수를 컵에 따라가지고 돌아왔다. 미스안이 유키코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 여자분은 누구죠?”
 “어제 처음 만난 여잡니다.” “그러면 금남로에서 만난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국인 같지가 않은데… 혹시 일본인?” “재일교표 삼셉니다. 조부 가족을 찾아보기 위해서 내한했죠.” “아, 그렇군요.” 미스안은 알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유키코를 향해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그러자 유키코도 정중히 허리를 숙여 답례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미스안을 오랜만에 만났지만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아니, 그녀를 이곳에서 만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것도 진압군에게 쫓기는 상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