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주년을 맞는 올해의 광복절을 전후해서도 친일잔재 청산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요한 과제로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국가 차원에서 뒤늦게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는 특별위원회가 조직되어 조사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친일잔재를 비롯한 일그러진 근대사의 흔적들은 인적, 물적 차원에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과 정신의 곳곳에 질근 뿌리를 내리고 우리에게 온갖 혼란을 고통을 선사하고 있다.
 일제시대가 남긴 근대사의 온갖 혼란 중에서도 아직도 온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해 망실된 채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지난 3월 100년 만에 일본으로부터 환수받아 원래의 유적이 있던 북한 지역으로 인도된 바 있는 북관대첩비에 대한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 있고,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 47책이 지난 달 93년 만에 환수된 바 있지만,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규장각에서 대출해간 도서 수백 권은 아직도 반환되지 않은 채 대출중이라는 최근 보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해외에 반출된 문화재의 수와 규모는 제대로 파악조차 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미술평론가로 널리 알려진 이구열 선생이 문화부 민완기자 시절에 취재하여 1973년에 출간한 ‘한국문화재비화’는 이렇게 망실된 우리의 문화유산에 얽힌 각종 비화를 담고 있어 출간 당시 커다란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 책이다. 1996년 ‘한국문화재수난사’(돌베개)로 재출간된 이 책은 지금까지도 문화재 담당 기자들이 필독서로 삼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일제를 비롯해 외세에 의해 자행되었던 약탈과 도난, 불법적 해외 유출에 얽힌 한국문화재의 수난사는 곧 우리의 얼과 유산을 제대로 지키고 보듬지 못한 우리 근현대사의 일그러진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이구열 선생의 선구적 업적에 이어 최근 들어 이 분야에서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저술가 이순우 씨의 활동은 매우 소중하다. 증권회사와 투자자문회사에 다니면서 돈 잘 버는 전문가로 재직하다가 우리 문화유산에 끌려 직장도 그만두고 문헌자료더미 속에 파묻혀 역사의 실상을 생생하게 조명하는 일에 신명을 다하고 있는 분이다. 매일 쉬지 않고 조사, 연구, 기록하는 그의 이러한 역사바로잡기 작업은 “일그러진 근대 역사의 흔적(cafe.daum.net/distorted)”이라는 카페를 통해서 손쉽게 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나날의 작업을 모아서 여러 권의 출간하였는데,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관한 조사보고서’(전2권, 하늘재 2002, 2003), ‘테라우치 총독, 조선의 꽃이 되다’(하늘재, 2004) 그리고 지난 해 광복절에 즈음하여 출간된 ‘그들은 정말 조선을 사랑했을까’(하늘재, 2005) 등은 모두 우리의 일그러진 근대사의 흔적들에 대한 핍진한 보고이자 잘못 알려진 역사의 통념에 대한 균형 잡힌 교정지이다.
 얼마 전 이순우 씨는 중요한 역사의 현장을 밝혔다. 바로 1910년 한일합병조약이 최결된 장소인 남산 자락의 조선통감 관저의 정확한 위치를 밝혀낸 것이다. 이곳은 구한말 일본공사관으로 지어졌다가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일본인 조선통감의 거처로 사용되었고 1910년 한일합병조약이 바로 이곳에서 체결되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관저 등으로 사용된 역사적 장소지만 현재는 농구 골대와 벤치가 듬성듬성 들어선 공터로 변해 버렸다. 이를 밝혀낸 이순우 씨는 “복원은커녕 표석 하나조차 세우기 힘든 사정이다. 광복절 행사만 떠들썩하게 할 게 아니라 치욕스러운 역사의 현장을 재현하고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지난 해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의 ‘송도(松島)’라는 지명이 일본의 삼대명승지인 ‘마츠시마’에서 유래한 왜색지명이라는 논란이 제기되었을 때 이순우 씨는 이와 관련된 자료들을 널리 수집하여 이러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해준 바 있다. 그러나 ‘송도’라는 지명은 ‘송도동’이라는 행정동명으로 확정되어 대한민국의 국제브랜드로 홍보되고 있다. 61주년을 맞는 광복절에 우리의 문화유산에 얽힌 왜곡과 굴절의 역사를 앞의 책들로 섭렵하면서, 무형의 의식잔재들로 남아 있는 우리 주변의 친일잔재들도 되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