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해무-10
 그래서 고정근만 나타나면 모든 기관장들은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곤 했다. 왜냐하면 그가 은밀히 기관장들의 근무태도나 사생활, 비위 같은 것까지 파악해서 즉보한다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소문을 구태여 부인하려 들지 않았다. 그것은 중앙당 연수회의에 면대표로 참석하거나, 지도장이라는 막강한 자리를 누리고 보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실정이니 신임 지서장이 언제 들어오며, 어떤 종류의 인물이 발령받아 올 것인지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했다.
“임기가 다 되었으니 곧 발령이 있겠죠.”
나는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고정근이 내 신상을 파악해서 비밀 노트에 적어 놓았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오월에 접어드니까 데모가 더욱 과격해지고 있어요.”
고정근은 내 태도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학생들과 재야단체의 움직임이었다. 즉 5공 정권이 말기로 접어들면서 재야단체의 대정부 투쟁이 공격적으로 변했으며, 학생들은 물론이고 시민들조차 데모에 가담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면지부지도장으로서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군사정권의 집권 말기 증상이 사회 각층에서 드러나고, 학생과 시민이 연대한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가 있을 것 같은데, 정부나 경찰에서는 어떤 대책을 세워놓고 있느냐, 하는 것이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의 말도 일리는 있어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의 집권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건 당연했다. 즉 고정근은 쥐꼬리만한 자신의 입지가 하루아침에 추락해 버릴까봐 걱정이 되어 지서로 올라왔던 것이다.
“유월에 대대적인 시위가 있을 거란 소문이 있어요.”
“유월에요?”
고정근은 걱정스럽다는 듯이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그런 걱정도 잠시뿐이었다. 그는 지서 안을 쓱 둘러보더니 떨떠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요즘 지서 직원들 근무가 엉망이라는 얘기가 떠돌아요.”
고정근은 마치 감독순시를 나온 상급자처럼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그러나 이내 정색을 하며 반문했다.
“면직원들은 매일 개 잡아먹을 궁리만 한다면서요?”
내 말에 고정근이 움찔했다.
“면직원들이요?”
“그렇다던데요.”
“그럴 리가요.”
고정근은 이렇게 말했으나 동요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대민 첩보수집이라면 민정당 면지부지도장 못지않게 경찰도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고 있었다. 즉 5공의 주요 정보원천은 안기부와 보안사였으나, 전국 각지에서 전개되고 있는 재야단체나 좌경사범의 대정부투쟁, 각종 민생사범과 서민동향, 특히 산간벽지나 도서지역의 미세한 정보는 경찰을 따라올 부서가 없었다. 물론 안기부나 보안사가 크고 굵직굵직한 정보만 다루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주요한 정보 자체가 보잘 것 없는 첩보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어서, 작고 가벼운 사안이라도 간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주요 정책 입안자나 결정권자는 항상 타기관의 정보보다 경찰 라인에서 올라오는 첩보를 우선시했다. 더구나 경찰청에서는 직원 개개인한테 매월 4건 이상의 첩보를 쓰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그래서 직원들은 면 단위 행사나 공무원 비리, 당원 동태, 이장과 어촌계장 활동사항, 여객선 운항실태, 주민의 대정부 여론, 관할 군부대 움직임까지 파악해서 건수를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