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이래 31명 ‥ 도가 국가발전 주도
 지난 3일 5·31 지방선거에서 선출된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취임했다.
32대 경기도지사다. 도지사는 여론의 향방을 읽어 큰 틀에서 도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시·군 사이의 각종 분쟁과 마찰을 조정해 도내 31개 시·군이 원활하고 조화롭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자리다. 그동안 31명이 이자리를 거쳐갔다.
28명이 관선 도지사이고 지난 1995년 광역단체장을 선거를 통해 선출한 뒤부터 경기도는 3명의 민선 도지사를 배출했다.

초대 경기도지사는 해방직후인 1946년 2월 취임, 4년8개월동안 도의 행정을 관장한 구자옥(1890년생)씨다. 구 전지사는 지난 6·25때 납북됐다.
구 전지사 뒤로 이해익(2대), 김영기(3대), 이익흥(4대), 최헌길(5대), 최문경(6대), 윤원선(7대), 신광균(8대), 박창원(9대), 이흥배(10대), 조병규(15대), 김태호(19대), 임사빈(22대), 윤세달(25대) 전 지사 등 14명이 별세했다.
11대 박태원(1924년생) 전지사는 육군 소장으로 예편해 치안국장을 지낸뒤 1964년 도지사에 취임해 4년을 재직했다.퇴임후에는 제8대 국회에서 공화당 전국구의원으로 원내부총무를 지내고 1984년 삼성그룹중앙연수원장으로 삼성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지난 91년 삼성생명 고문을 끝으로 사회활동은 거의 접은 상태다. 지금은 노환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을 제외하면 건강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다.
12대 남봉진(1921년생) 전지사는 고시 행정과에 합격해 경북부지사, 서울시 제1부시장을 거쳐 1968년부터 만3년 동안 도지사직을 맡았다. 퇴임후에 양회공업협회 회장을 맡는 등 시멘트 업계에 종사하다 지금은 노환으로 건강은 썩 좋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 이춘례(80)씨와 함께 용인 노블카운티에서 지내고 있다.

김태경(1933년생) 13대 도지사. 고등고시 행정·사법과에 합격한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을 지낸 뒤 1971년 도지사로 취임, 1년의 임기를 지냈다. 퇴임후 4년여 동안 동부고속 사장을 맡았다가 변호사로 개업한 직후 삼성전자 부사장을 잠시 지냈다. 지금도 변호사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손수익(1932년생) 14대 도지사는 1972년 6월부터 7개월동안 도지사를 지낸뒤 산림청장, 충북지사, 교통부 장관 등 주요 관직을 두루 거쳤다. 지금은 전남장흥으로 낙향,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한 채 여생을 보내고 있다.

경남 밀양이 고향인 16대 손재식(1934년생) 도지사는 1976년부터 3년여 동안 도에 머물렀다가 바로 부산시장을 지냈다. 지난 2001년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장을 끝으로 사회활동을 마감하고 가족과 함께 여생을 보내고 있다.

1980년 1월부터 8개월동안 도 행정을 지휘했던 17대 김주남(1931년생) 도지사는 퇴임 후 바로 건설부 장관, 한국해외개발공사 이사장, 한국도로공사 이사장 등 정부투자기관에서 일했다. 지금은 자택에서 소일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육군 대위 출신이었던 염보현(1932년) 18대 도지사는 경기도경 국장, 경찰대 학장 등 경찰계통에서 공직생활을 하다 1980년 도지사를 시작으로 일반행정에 뛰어들었다. 퇴임후 서울시장,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지냈다. 지난 96년 자민련에 입당 정치계에 발을 들여놨다가 지금은 사회생활을 거의 접은 상태다.
이해구(1937년생) 20대 경기도지사는 4선의 국회의원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84년부터 1년 반동안 도지사를 맡았다. 퇴임직후 안기부 1차장으로 재직하면서 일명 ‘수지김 사건’에서 윤태식 납치자작극 수사결과를 보고 받고도 장세동과 함께 수사종결을 지시한 이력으로 2004 총선시민연대에서 낙천대상자로 선정됐다.1988년 안성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로 14대(민자당), 15대(신한국당) 16대(한나라당)에 내리 4선을 했다. 지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김선미의원에게 자리를 내주고 지금은 한나라당 경기도당 고문을 맡고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 걸출했던 웃음을 기억하는 김용래(1934년생) 21대 도지사. 1986년부터 만 2년동안 도지사를 지낸 뒤 바로 서울시장에 취임했다. 퇴임후 대한올림픽위원회고문, 덕성여대 총장을 맡은 뒤 지금은 덕성여대 초빙교수와 사랑의 녹색운동본부 명예총재를 맡으면서 사회와 연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심재홍(1933년생) 24대 도지사. 김포출신의 정통관료로 시흥군 군수, 의정부시장, 도 기획관리실장, 부지사를 거쳐 1992년부터 1년동안 도지사로 일했다.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 대한적십자사 중앙위원을 지냈다.
임경호(1940년생) 26대 도지사는 1966년 도 내무국 서무과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1994년 도지사에 임명됐으나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음해 초대 경기개발연구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 2002년 제4대 경기개발연구원장을 맡았다. 1998년부터 (사)지방의회발전연구원 원장으로 지방자치행정과 지방의회발전을 위해 연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김용선 27대 도지사는 지금 화성시에 편입된 송탄, 동두천,의정부, 광명,수원,안양시 시장, 경기도 부지사를 거쳐 1994년부터 1년2개월 동안 도지사로 재직했다. 퇴임후에는 한국지방재정공제회회장을 지냈다.
2005년 2월에 취임한 이해재(1936년생) 28대 도지사는 같은해 6월 1대 민선 광역단체장을 선출하면서 4개월의 짧은 임기를 지냈다. 퇴임과 함께 당시 민자당 국책자문위원장을 맡아 지금까지 한나라당 자문역을 맡고있다.
29대 이인제(1948년생)도지사는 1995년 주민이 직접 뽑은 민선으로는 1기다.
사법고시 출신으로 13,14대 국회의원, 노동부 장관을 거친 뒤 도지사로 당선됐다. 임기를 마친뒤 다시 16,17대 국회에 입성했다. 1997년에는 제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내 경선에 불복, 탈당하고 국민신당을 새로 창당해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006년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민련을 탕당, 심대평 충남지사가 주도해 만든 국민중심당에 합류했다. 지금은 최고위원을 맡고 있다.

1998년 국민회의 후보로 민선2기 경기도지사에 출마해 당선된 임창렬(1944년생) 전지사.
행정고시출신으로 조달청장, 통상산업부 장관,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뒤 도지사를 맡았다. 재임시절 외자유치와 기업육성으로 경제도지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99년 경기은행 퇴출과정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임기가 끝난 뒤 신생 통신사인 ‘뉴시스’사의 회장를 잠시 맡았고, 지금은 벤처 기업 ‘알앤엘바이오’의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 5월 김문수 도지사의 후보시절 정책자문위원장을 맡으면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 6월30일 4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32대 손학규(1947년생) 도지사. 인하대, 서강대에서 정치외교학을 가르치다 정치에 뛰어들어 14,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5대 때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았고, 16대 임기중이던 지난 2002년 한나라당 후보로 지방선거에 출마해 도지사로 당선돼 지난달말 임기를 마쳤다. 지금은 2007년 대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퇴임 직후 민심탐방을 위한 ‘민심대장정’을 시작했다. 오는 9월까지 전국 곳곳을 돌아 본 뒤 중앙정치 무대에 복귀할 예정이다.
/송명희기자(블로그)thim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