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넝쿨장미-29
 
 그녀의 말대로 정소희는 위장취업을 한 게 분명했다. 아니, 누가 보아도 위장취업을 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정소희가 작성한 이력서 필체가 타 여공들과 눈에 띄게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확실히 위장취업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 나는 그렇게 단정했다. 그녀의 고단하고 피폐한 삶을 보아도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이유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그녀의 희생으로 점철된 삶을 돌아보더라도 위장취업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정소희의 삶은 역경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 여자는 위장취업 같은 걸 할 리가 없어.”
 “그걸 어떻게 알죠?”
 “그건 내가 증명할 수 있어.”
 나는 정소희의 이력서를 서류철에서 빼들었다. 그리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차지연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뽑아든 이력서를 거칠게 접어서 호주머니 속에 찔러 넣었다. 절대로 위장취업은 할 리가 없다고 중얼거리며. 정소희를 만나던 해에 나는 군에서 제대를 하고,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즉 나는 군에서 발생한 예기치 않은 사건에 휘말려 불명예제대를 하고 광주에 내려가 있었던 것이다. 막내 삼촌의 식당일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그러나 내가 광주로 내려간 주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그것은 군에서 터졌던 불미스런 사건을 잊기 위한 나 나름대로의 도피성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참담한 군시절을 잊는다는 명목으로 광주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한참 싱그러운 향을 풍기고 있는 아카시아 향을 맡으며. 그런데 문제는 그때가 바로 신군부의 집권 야욕이 노골화되어 가던 시기라는 점이었다. 즉 유신 독재정권의 몰락을 지켜본 신군부는 정권탈취의 적기라고 판단하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광주지역 재야단체와 학생들은 그들의 의도를 간과한 채 과격한 시위를 계속했다. 결국 그것을 기다리고 있던 신군부는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는 의도적으로 유혈사태를 일으키며 시민들의 시위를 강경 진압했다. 그 혼란의 도시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위험에 빠진 소희를 구해냈다. 그것도 진압군에게 폭행을 당하고 죽어가던 18세의 여고생을. 그게 소희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이 얘가 위장취업을 한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야.” “그걸 어떻게 단정하죠?”
 
차지연이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건… 내가 보증할 수 있어.” “그래요?”
 내가 소희를 마지막으로 본 건 6년 전 ××섬에서였다. 나는 그때 막 경장으로 진급한 참이어서, 경비부서의 일종인 섬근무를 때우고 있었다. 즉 일 계급 진급한 사람은 무조건 한적한 곳에서 근무해야 했고, 나는 그 근무를 기동대 대신 섬을 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특수지가 바로 서해안의 작은 섬이었다. 물론 그곳에도 면사무소는 있었고, 농협분소와 우체국, 중고교, 농촌지도소 같은 기관들도 소재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근무를 하고 생활을 하기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직원들이 그런 외지고 척박한 곳에서 근무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것은 가족과 떨어져서 홀아비 아닌 홀아비 생활을 해야 하는 부담감과 경찰관으로서 느끼는 소외감 때문이었다. 즉 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관사에 기거하며 밥을 해먹거나, 식당에서 돈을 내고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거기다가 사람들 구경은 물론이고 문화적 혜택도 일체 받지 못했으므로, 섬 근무를 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섬에서의 근무는 따분함과 무료한 나날의 연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