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남한강 농민문학축전
 29일 오후 3시 여주군 점동면 도리 남한강변 고구마 밭 한켠에는 바람에 휘날리는 갈대 숲과 남한강변을 배경으로 ‘한반도 평화와 상생을 위한 문학축전 2005 제5회 여주 남한강 농민문학축전’ 특설무대가 마련됐다.
무대 뒤로 멀리 보이는 강천면 삿갓봉 줄기에는 색동 옷을 입고 노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듯, 여기저기 울긋불긋 단풍 잎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뽑내고 있어 가을 정취를 흡뻑 느낄 수 있었다.
낯 익은 문학인들과 노래 패, 춤꾼 그리고 점동면 도리 주민과 학생 등 2백여명이 행사시간에 맞춰 삼삼오오 모여 들기 시작했다.
가을 들판에서 한 마당 흥을 돋우는 행사로 사람들의 발 길을 끌어들인 이번 행사명은 한국문학평화포럼(회장 고은)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사장 황석영)가 공동으로 준비한 ‘한반도 평화와 상생을 위한 문학축전 2005’의 마지막 행사인 ‘제5회 여주 남한강 농민문학축전’.
행사장에는 미국을 위시한 경제대국 주도로 불평등하게 체결된 우루과이라운드 협정과 WTO체제 하에서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 당하고 있는  우리 농민들의 간곡한 소망을 담은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마치 포근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농촌에서 상생과 평화의 꽃이 피어나기를 희망하는 것 처럼….
이날 신경림 시인을 대신해 기조강연에 나선 고은 시인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에 대한 숭고함이 사라진 이 시대가 안타깝다”며 “우리 농경문화는 한반도의 유구한 정신의 근원이고 이를 되돌아 보기 위해 우리가 이자리에 모였다”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또 대지의 참다운 어머니인 땅을 일궈 우리의 농업을 지켜내고자 노력하고 있는 여주군민들에게 우리 문화예술인들도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자 이자리에 모였다면서 농민들을 위로했다.
이어 모던락 그룹 ‘라인업’의 노래 공연이 끝나고 시인들의 시낭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고재종 시인은 ‘한때 농사를 지은 사람으로서 쌀 비준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것에 답답함을 느낀다’고 말한 뒤 ‘지난해 가마당 15만원 하던 쌀이 지금 12만원으로 내렸는데 3만원 차이지만 농민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고 시인은 농촌을 주제로 한 ‘이 땅에 아직 가을이 온다는 것은’이란 제목의 자작시를 낭송했다.
가을은 알알이 벼 영그는 소리로 오다가 바람에 샛 노랗게 벼 때깔나는 빚으로 오다가 어느 덧 논두렁 이곳저곳에 들국 향기 퍼지면 가을은 누리누리 싱싱한 항금물결로 일렁이다가 사람과 사람의 구릿빛 얼굴, 하얀 이빨로 빛나다가 이윽고 천지사방에 맑은 햇살 서럽도록 쏟아지면 가을은 싹둑싹둑 , 벼 베는 소리로 서늘하다가 묵직한 벼 깍지 한 아름 오지다가 마침내 쭉정이 알곡 가려지는 타작마당에 서면…………천근 빛더미보다 더 무거운 골병과 고독으로 오네 그래도 여전히 가을이 온다는 것은 우리의 성성한 노동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 그 빛나는 노동이 억새꽃도 눈부신 진짜 가을을 나락빛 그리움으로 노엽게 꿈꾼다는 것.
고 시인이 울먹임이 베어있는 나즈막한 음성으로 시 낭송을 하자 행사장 분위기가 숙여해 지면서 시 낭송은 김정숙 시인의 ‘아버지와 승우’로  이어졌다.
아버지는 기역자 조선낫을 들고 꼬불꼬불한 논둑길을 걸어갔다 허리춤에는 가을 햇빛이 다가와 졸고 있었다 어느 만큼인가 냉해맞은 논배미 비우고 있을때 후두둑 후두둑 콩알만한 소나기가 아버자 등을 때리기 시작했다……기껏 한다는 소리가 당장 이 집에서 나가 버려 이눔 자식아 아버지는 산모퉁이에 앉아 담배불을 그었다 그때 누런 들판위에 서서 비를 맞고 있던 허수아비 씨익, 웃고 있었다.
 강 바람이 제법 차가워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 어느 누구나 똑같이 접했었던 농촌 이야기가 시로 낭송되자 모두들 공감한다는 듯 큰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나 온 온 농촌 얘기와 지금 어려운 농촌현실을 어떻게 이처럼 잘 표현할 수 있을 까 하는 농민들의 반응이었다.
행사에서는 박운식 시인과 함께 공광규, 이흔복 시인 등이 농촌현실과 남한강의 가을 등을 주제로 시낭송을 했다.
또 장편소설 ‘남한강’의 저자인 소설가 강승원의 산문 낭독 순서도 진행됐다.
‘춤패 뉘 무용단’의 한국 춤과 ‘김기인과 스스로 춤모임’의 현대무용, ‘무당시인 오우열과 홍세미 만신’의 농민소원 굿 공연도 곁들여졌다.
도리 마을 이경희 이장은 “행사를 통해 어려운 농촌현실을 이해해 주고 힘을 줘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우리마을은 올해 녹색체험 마을로 선정돼 앞으로 관광과 동시에 농촌체험도 함께 즐길수 있는 곳으로 변화를 모색 중”이라며 다음에도 꼭 방문해 줄것을 당부했다.
이날 부대행사로는 김지하·이시영·김용택·도종환 시인 등이 참석하는 ‘남한강 걸개시화전’과 ‘고구마캐기 체험마당’도 진행됐다.
한국문학평화포럼은 앞서 지난 4월 강원도 사북탄광을 시작으로 백령도, 울진, 거창에서 네 차례 문학축전을 연바 있다./여주=김광섭기자(블로그)gskim
 
 사진설명.
 사진1569번 : 최근 대학가와 각종 문화행사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카톨릭대학교 동아리 밴드 ‘실험’ 출신들로 구성된 모던락 그룹 라인업(이윤찬·이상재·서동찬)이 고은 시인의 기조 강연이 끝난후 힘찬 노래를 하고 있다.
 사진1584번·사진1588번 : 29일 오후 3시 여주군 점동면 도리 남한강변에서 개최된 ‘제5회 여주 남한강 농민문학 축전’ 에서 고은 시인이 참석하지 못한 신경림 시인을 대신해 기조강연과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1595번·사진1598번 : 뒤로는 남한강변 갈대숲이 우거지 무대에서 농민의 마음을 달래주는 듯한 구슬픈고 때론 힘찬 판소리를 하고 있는 김창규(고수)와 김현란(창)씨.
 이날 판소리는 바람불고 추운 날씨에서도 나이든 농민들과 시인들의 어께를 으쓱 으쓱 움직이게  하는 등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사진 1601번 : 이흔복 시인이 ‘여강! 또루박이, 절굿대, 구절초 도드라진 낙조청강의 점점홍∼∼∼한 사람의 그림자 꿈속에 남아 물결젖는다. 라는  ‘여강간다’ 시를 낭독하고 있다.